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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모든 희생에 고개 숙이며...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에 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봄이 왔으니 우리의 일상에도 봄이 오길 간절히 바래 봅니다. 평안하신지요?

마이클은 걸프전을 비롯하여 여러 야전 지휘관을 거쳤고 귀국 후 행정직을 맡고 있는 해병대 중령입니다. 선교 현장에 있다가 귀국해서 본부 사역을 하고 있는 본부 사역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는 늘 전사자 명단을 확인하며 자신이 아는 이름이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느날 같은 고향 출신인 해병대 일병 챈스(1984-2004)가 전사자 명단에 올라온 것을 보고 비록 안면은 없지만 그의 시신을 유가족에게 전하는 운구 임무에 자원합니다. 영관급 장교가 하는 일은 아니지만 자원한 겁니다. 챈스는 20살 청년인데 이라크에서 갑작스런 공격으로 인해 사망했고 시신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마이클은 챈스의 시신과 함께 비행기와 차로 며칠간 이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을 포함하여 모든 이들이 이 젊은 병사의 죽음을 존엄하게 여기며 각자의 방식으로 예의를 갖추는 것에 크게 감동합니다. 미국인들의 이런 시민의식은 참 부러운 일이죠. 그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챈스 일병의 귀환"(Taking Chance)입니다. 비행기 승객은 마이클 중령이 먼저 내릴 때까지 모두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마이클 중령과 운구차가 가는 것을 본 차량들은 전조등을 켜고 조의를 표하며 그 차량을 앞 뒤로 호송합니다. 관을 덮은 채로 장례 치를 것을 알면서도 시신에게 해병대 정복을 만들어 입히는 팀에서는 아주 꼼꼼하게 정성껏 만들어 입힙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희생을 치른 챈스와 운구자인 마이클에 대해 최선의 예의를 갖추고 대합니다. 

2019년 9월 캄보디아에서 뎅기열로 쓰러진 혜원이(당시 고3)는 2년 반을 누워있다가 지난 2월 20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가족의 아픔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고인의 명복과 유가족에게 주님의 위로가 있기를 삼가 빕니다. 선교사 자녀인 혜원이의 이런 희생을 전해 들으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여러 사역자들과 자녀들이 기억 났습니다.

선교사들과 선교사 자녀 혹은 현지 동역자들의 소천에는 소개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고 소개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있습니다. 알량한 신학을 가진 교회와 기독교인, 심지어 같은 사역자들의 판단 때문에 고인에 대한 존중과 슬픔을 겪는 유가족에 대한 위로도 제대로 못하고 지나간 경우도 있었음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영화에는 운구자가 유족을 만났을 때 어떻게 사망했는지에 대해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교육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희생을 희생으로만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혜원이가 밖에 오래 있었기에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있다가 따뜻한 어느날 안치하려"한다는 선교사님의 인사 글에 마음 시렸습니다. 지금도 가족 혹은 선교지에서 가족처럼 지내던 현지 동료의 갑작스런 소천으로 힘들어 하는 사역자들이 있음을 압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물론 말도 못 꺼내는 경우도 있고요. 어떤 희생이었던 주님을 따라 가는 길에 부득이 치러야 하는 고난이며 희생이었다고 믿습니다. 주님 나라를 위해 치른 모든 희생에 깊이 고개숙여 조의를 표합니다. 샬롬.

 

2022년 3월 1일

권성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