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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핵두변주(核斗辨州)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에 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평안하신지요? 작년 10월 '품에서'에서 '한 사람의 구도자'라는 제목으로 조선에 처음으로 기독교 공동체를 시작한 이벽 선생에 대해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이 쓰신 '성교요지'라는 글이 있는데 다 주옥같은 글이지만 그 안에 '선교사'의 삶을 묘사한 글이 있어 오래전 부터 좋아했습니다. 긴글이 아니니 옮겨보면

 

振枯援單(진고원단) 주린 자를 살리고 외로운 이를 돌보며

宥勇伸囚(유용신수) 회개자를 용서하고 죄인을 해방시키며

苗系齊魯(묘계제로) 제나라와 노나라의 자손들같이

品格呂歐(품격여구) 여상과 구양수의 품격을 심고

朔夏盤蹈(삭하반도) 먼 북쪽으로부터 중화에 이르기까지 두루 돌아다니며

核斗辨州(핵두변주) 저물면 북두칠성으로 방향을 잡고

曁寒迄熱(기한흘열) 추위와 더위도 가리지 않고

曳杖緯球(예장위구) 지팡이를 끌고 지구 위 곳곳에 복음을 전하도다

 

좋죠? 옆에 있는 해석은 이벽 연구의 권위자인 이성배 신부님의 해석입니다. 

 

 

제 사무실 옆, 전문인 선교훈련기관에 계신 간사님 중에 중국에서 깊이(?) 공부하고 오신 분이 계시는데 무슨 이야기 끝에 이 부분을 보여 드리고 특히 제가 좋아하는 핵두변주(저물면 북두칠성으로 방향을 잡고) 부분을 보여 드리면서 한자 해석을 부탁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핵과 변은 모두 '분별하다'는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비슷한 뜻의 단어로 병행을 만드는 중국식 사자성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역하면 두(북두칠성)을 파악하여 주(지역)을 분별한다는 말이 됩니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을 알기 위해서는 땅을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별을 보아야 한다는 뜻이 가슴으로 훅 들어오면서 이벽 선생이 쓰신 '두', 즉 별을 제가 자주 쓰는 본질, 본문, 성삼위 하나님, 성경 등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런 해석만 해도 가슴이 쿵쾅하였는데 이어서 덧붙이는 간사님의 설명에 정신이 혼미해 졌습니다.  '핵'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핵은 우리가 아는대로 핵심, 핵무기 그리고 요즘 핵인싸 등 명사 혹은 형용사적 용법으로 사용될 때는 씨, 중심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 입니다. 하지만 간사님의 설명은 동사적인 의미로 사용될 경우 단순한 분별이 아니라 샅샅히 파악하고 세밀하게 연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뒤에 나오는 '변'과는 쌍을 이루지만 그 보다 훨씬 깊은 단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깊이 상고하고 연구하고 성찰한다는 의미이겠죠. '별을 파악하여' 혹은 '본질을 파악하여'라고 간단히 넘겨서는 안되는 심오한 뜻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벽이라는 분을 너무 좋아해서 그 분의 의도와 무관한 해석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별을 세밀하게 성찰한 후 땅을 분별한다는 것이 요즈음 제가 계속 성찰하는 것과 맥락이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의 별, 즉 본질을 먼저, 그것도 대충 '쓱'보는 것이 아니라 아주 세밀하게 연구하고 대조하고 성찰한 후에, 그렇게 얻어진 결과를 기초로 해서 상황을 파악하고 그 상황에 맞는 본질 적용을 해 나가야 하는 오늘날 선교의 핵심을 '핵두변주'(核斗辨州)가 말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핵두나 변주는 다른 문장에서 자주 보이는 단어가 아니라는 설명을 성교요지 주해에서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용어는 어디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를 차용한 것이 아니라 이벽 선생님이 쓴 용어라고 이해한다면 4자로 모든 생각을 압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핵두'한 다음 '변주'한다는 표현이야 말로 선생이 30대 나이에 복음을 위해 가슴아프게 소천하신지 200년이 훨씬 지난 후에도 깊이 상고하게 되는 대단한 성찰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선생님들 계신 자리에서 '핵두'에 많은 시간을 보내시고 함께 모여 나눔도 하시고 그리고 나서 각자의 상황에 '변주'하시는 귀한 사역을 감당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내내 강건하세요. 샬롬.

 

2022년 9월 1일

권성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