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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서툰 사람들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평안하신지요? 코로나의 긴 여정 중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라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생겼습니다.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점차로 보게되는 기쁨을 누립니다.

얼마 전 설 명절을 보내고 오랫만에 아내와 함께 대학로 연극무대를 찾았습니다. 갑자기 찾아 온 한파로 인해 대낮의 날씨가 영하 10도에 이르는 추운 날이었는데 젊은 연극인들이 보여주는 무대에 실컷 웃으며 마음이 훈훈해 졌습니다.

 

 

무대는 두 남녀가 만나며 시작됩니다. 혼자 살고 있는 26살(만)의 중학교 여선생님, 혼자 살고 있음에도 문 잠그는 것을 잊고 잠이 드는 다소 허술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날 그 집을 털겠다고 찾아 왔으나 문이 열려 있는지 모르고 반대로 문을 따느라 계속 잠그게 되어 아주 애를 먹다가 겨우 침입한 서툰 27살(한국나이) 도둑 청년의 만남입니다. 이후 별로 가져갈 것도 없는 방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는 매우 치열하지만 정상적인 도둑과 주인의 대화라고 보기에는 어딘가 허술하고 초점이 잘 안맞고 서툴기 짝이 없습니다. 

연극을 보는 내내 오늘날 세상에게 필요한 것, 더 나아가 세상의 존재 목적은 발전인가? 아니면 따뜻함인가? 그리고 이어서 따뜻함이라면 무엇으로 혹은 누구에 의해 따뜻해 지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문화되고 속도가 더 빨라지고 과학기술이 더욱 발전하는 시대에 만일 주인과 도둑으로 만난 두 사람이 각자 자신의 일에 빈틈 없는 전문인이었다면 아마도 그 결과는 강도, 살인, 강간, 절도, 구속 등으로 귀결되었을 것이고 추운 세상에 또 하나의 추위를 더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극은 두 남녀가 서로의 나이를 알게 되면서 반전을 맞이 합니다. 도둑은 당연 반말로, 여교사는 존대하며 진행되어 왔는데 사실 같은 나이고 심지어 여교사는 1월생, 도둑 청년은 12월생이었습니다. 저는 내심 여교사가 '나는 빠른 97이야'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 말은 없더군요. 저처럼 '빠른 뭐뭐'로 살아온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코드인 것 같습니다. 암튼 무대 위의 서툴고 허술한 두 남녀는 비록 부적절한 만남(?)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서툰 서로를 짠하게 여기고 사랑하게 되면서 결말을 맞이합니다.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 부장이나 '나의 해방일지'의 염미정처럼 좀 사회적으로 서툴게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이 따뜻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계같은 세상에서 서툴게 사는 것이 물론 쉽지는 않겠죠. 아주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누가 좋은 선교사인가를 현지 공동체에게 물었을 때 의외로 '현지인에게 돈을 빌려간 선교사', 현지인에게 돈을 빌릴 수 밖에 없었던 서툰(vulnerable) 선교사였다는 이야기는 늘 베푸는 혹은 더 나아가 의도적이던 의도치 않던 군림하게 되는 선교사의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계신 곳에서 좀 서툴고, 빈틈있는 그런 분들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글을 맺습니다.

한가지, 그 서툰 사람을 연기하는 배우들, 특히 여배우의 그 많고 빠른 대사는 귀에 쏙쏙 들어올 만큼 소위 딕션(diction)이 아주 좋았다는 말을 덧 붙이고 싶습니다. 아주 프로였죠^^ 샬롬.

 

2023년 2월 1일

권성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