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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예수가 된 사람들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같은 길을 다니는데 어느새 벗꽃이 활짝피어 다른 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도 꽃이 활짝피어 다른 마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야기 하나:

1980년. 저는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이었습니다. 연극반에 가입을 했고 선배들이 준비한 봄 공연을 보면서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랜 군사독재를 끝내게 되었다는 시대 분위기를 반영하듯, 5월 축제에 맞춘 정기공연에는 '황태자의 첫사랑'을 뮤지컬로 하면 좋겠다는 둥 다소 흥분한 상태에서 대학연극의 능력을 벗어난 이야기를 하다가 마침내 대작 중 하나인 '햄릿'을 하기로 하고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신입생인 저는 다른 신입생 친구와 함께 '사신'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맡은 대사는 '네, 알겠습니다'라는 여섯 글자가 전부였습니다. 그나마 둘 중 한 사람이 하게 되어 있어 친구와 치열(?)하게 경쟁하느라 그 여섯 글자를 여러 톤으로 진지하게 연습하던 때가 기억납니다. 작년에 그 여섯 글자로 경쟁하던 친구의 장례에서 오래된 기억이 떠 올랐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던 연극은 새로운 독재의 등장과 함께 대학 휴교령과 계엄령으로 물거품되고 학교에 들어갈 수 없게 된 우리는 이 산 저 산으로 떠돌며 신입생 1년을 보낸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세월이 지나 군 제대를 하고 좀 더 진지하게 연극을 준비하던 중에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었으니 연극은 마치 끝내지 못한 숙제처럼 남아 아내와 가끔 대학로 연극을 찾으며 그 아쉬움을 달래곤 합니다.

 

이야기 둘:

연극계가 배고픈 걸로 잘 알려져 있으니 기독교 연극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척박한 기독교 연극/뮤지컬를 일구어 내고 독보적이나 여전히 메마른 영역에서 사역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광야아트센타의 대표로 있는 윤성인/최지영 선교사님, 그리고 함께 사역하는 윤지영 선교사님은 저희 선교회 산하 전문인 선교 훈련(GPTI)을 마친 분들로서 이 광야를 걷고 있습니다. 2023년 첫 공연으로 '더 북: 성경이 된 사람들'이라는 공연을 올리고 있는데 이 작품은 기독 뮤지컬로는 여러 기록을 가진 공연입니다. 10년 전에 이 공연 소식을 해외에서 들으며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에 초대해 주셔서 감동적인 뮤지컬을 보며 다시 연극 병이 도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야기 셋: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였던 존 위클리프는 복음이 라틴어 성경에 갇혀 일반 성도들은 알 수 없었던 시대에 앵글로 색슨족의 언어에 불과한 영어로 번역을 함으로써 신성모독의 죄를 범했고 이미 소천했음에도 불구하고 30년이 더 지나 그의 사상을 이어받은 체코의 얀 후스가 화형을 선고 받을 때 함께 선고를 받아 부관참시를 당한 개혁자입니다. 그를 따르는, 더 정확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따르는 이들을 '롤라드'라 불렀는데 이들은 번역된 성경을 소지하는 것이 불법이고 빼앗기기 때문에 성경을 나누어 외우고, 거리에 나타나 자신이 외운 성경을 낭독하는 방식으로 복음을 증거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연극의 부제인 '성경이 된 사람들'은 바로 그렇게 요한복음, 로마서 등으로 불리던 그 롤라드 한 사람, 한 사람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뮤지컬로 진행되는 이 연극은 늘 '성극'이 주던 연기의 아쉬움이 없이 감동적인 내용과 잘 짜여진 구성과 이 불모지에 헌신한 젊은 배우들의 노력에 힘입어 기립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는 감동을 전해 줍니다. 한국에 계시다면 꼭 보실 것을 권합니다. 

 

배우들과 사진찍는 특혜를...

 

이야기 넷:

성경 자체에 목숨을 걸어야 했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은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귀히 여겨야 하는지를 일깨워 줍니다. 그 시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하나님의 말씀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성경책이 아니라 곧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얻게 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이제 그런 자유를 얻고 살아가는 오늘,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성경을 가졌다는 것이 곧 그 때처럼 그리스도를 얻었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성경을 외우거나, 통독을 하거나, 필사를 하는 것이 신앙의 아름다운 면이고 일부 그리스도를 얻는 과정일 수 있겠지만 '롤라드'의 성경만큼 그리스도를 얻는 의미와 동일선상에 놓기는 어렵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성경이 된 사람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뮤지컬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생각 끝에 '성경이 된 사람들'의 오늘날 버전은 '예수가 된 사람들'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성경이 가리키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 몸에 담아 우리가 예수가 되는 것,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세상에서 살아 내는 것. 그것이 바른 해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자신처럼 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God [or Christ] became what we are so that we could become what he is.)는 옛 교부들의  말이 떠오릅니다. 샬롬.

 

2023년 4월 1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