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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당신만이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8월입니다. 평안하신지요? 한국은 무덥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디 계시던 강건하시기를 바라면서 소식 전합니다.

오늘은 문화 생활이 어려운 여러 선생님들께 연극 이야기 하나 전합니다. 얼마전 친구가 준 초대권을 들고 아내와 함께 대학로 연극 무대를 찾았습니다. 뮤지컬과 연극의 중간쯤, 뮤직드라마라고 합니다. 제목은 '당신만이'.

 

 

37년간의 결혼 이야기:

장소는 부산, 그 지역 출신의 젊은 두 남녀, 강봉식과 이필례가 주인공입니다. 박력이 넘쳐 주로 괌(고함)을 지르는 상남자와 만만찮게 기세 등등한 센 여자입니다. 필례의 입에서 '귀를 마 주 잡아 찢어삔다'(마주가 아니고 마와 주를 따로 읽어야 합니다. 둘 다 강조입니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서울 관객이 잘 이해할까 싶긴 했습니다. '내 아를 나도(낳아 줘)'라는 경상도 남자의 짧고 굵은 프로포즈를 화끈하게 받아들이면서 둘은 부부가 됩니다. 

 

30대와 40대 삶:

하지만 대부분 그렇듯 부부로서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결혼해 보니 남자네 집의 일년 제사가 8번, 젊은 여자 입장에서 너무 힘든 일인데 위로는 고사하고 되는 일도 없으면서 고함이나 지르고 보증서서 돈이나 날리니 필례는 봉식이 못마땅했고 이혼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반대로 봉식은 남자의 일에 사사건건 토를 달고 말싸움에 하나도 지지않고 대드는 필례가 싫었습니다. 그런 30대를 지나고 40대가 된 부부는 딸 둘이 있긴 하지만 아들을 몹시 자랑하는 주변의 친구가 꼴보기 싫어 아들을 낳으려고 늦둥이를 갖게 됩니다. 물론 극의 재미를 위해 셋째도 딸입니다.

 

50대:

이제 50대, 봉식은 실직하고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특히 성장하여 결혼하려는 딸로 인해 갈등을 겪습니다. 딸 은지는 직장에서 나름 인정받는 직장인인데 자폐 스펙트럼을 겪고 있는 영석이란 남자와 결혼하려고 합니다. 물론 부모는 절대 반대입니다. 이 부분은 결혼 적령기의 자녀를 둔 저로서 정말 도전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저는 아들만 둘이라 딸가진 부모의 심정은 더할것 같습니다. 이상적일만큼 훌륭한 은지는 '나는 뭐가 잘났냐?'며 영석씨와 결혼하겠다고 하는데 특히 상남자 아버지 강봉식은 절대 허락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결국 자식이기는 부모없다고 둘은 결혼하게 됩니다. 부부가 되어 부모로 살아가는 인생의 여정을 보여주는 연극입니다. 

 

 

마지막:

나이 먹고 아내는 병을 앓게 됩니다. 여전히 무뚝뚝한 봉식이지만 경상도 특유의 츤데레 방식으로 아픈 아내를 간호합니다. 그 두 사람의 무뚝뚝하게 표현되는 애뜻함은 옆에 있던 아내와 여러 사람을 훌쩍거리게 만들었고 저는 조용히 울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아내가 남편에게 툭툭 던지듯이 말합니다. '다니다가 괜찮은 할매 있으면 동무해, 연예는 절대 안된다. 그냥 동무해라.'

 

이혼의 위기도 있고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 왔는데 인생을 뒤돌아 보면 '당신만이', 바로 옆에 있는 그 '당신'이 희노애락을 함께한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만드는 연극입니다. 마지막 장면에 그냥 들어도 가슴아픈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라는 곡이 배경으로 나옵니다. 사실 요즘은 '어느 80대 노부부 이야기'로 제목을 바꾸어야 하죠.

 

얼마전 제가 소속한 선교회에서 4년마다 열리는 선교사 총회가 있었습니다. 4년전에 심한 논쟁이 있어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번 총회는 모두의 마음이 그랬는지 제가 경험한 지난 30년 어느 총회보다 화목하고 은혜로운 총회였습니다. 연극을 보고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웅다웅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논쟁하고 했던 모든 시간들 그리고 은퇴하고 은퇴를 앞둔 모든 선배 선교사님들, 한때 밉기도 하고 그랬는데 그 분들의 존재가 마치 봉식이나 필례와 같은 사람들이었다고...

 

연극 끝나고 나와 대학로를 걷는데 아내가 손을 잡았습니다. 물론 제 아내는 보통 때도 힘이 없어 제 손을 잡고 걸으니 일상적일 수 있겠지만 그날은 좀 다른 감정으로 잡은 것 같습니다. 아니면 그냥 제가 다른 감정으로 느꼈는지 모르죠. 인생의 친구같은 아내 그리고 남편이 있다는 고마움 같은 것. 오늘 어디선가 홀로 계신 분들이 있다면 주님께서 그렇게 손 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성이던 동성이던 마음 나누는 '동무'가 있기를 바래봅니다. 샬롬.

 

2023년 8월 1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