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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저고리시스터와 뉴진스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11월입니다. 평안하신지요? 더위의 기운이 좀 가신 듯 합니다. 

얼마전 어느 모임에 말씀을 나누러 갔다가 그곳에 출석하시는 목사님 부부와 저녁을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목사님 가정의 큰 딸이 뮤지컬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마침 공연 중인 뮤지컬 표를 보내 주셔서 아내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그 공연은 한국 걸그룹의 역사를 그린 "시스터즈"(She Stars!)였고 따님인 전수영 작가의 작품이고 전작가의 스승인 박칼린 선생이 감독을 맡았는데 말하자면, 요즘 가장 핫한 뮤지컬이었습니다.

 

공연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했던 무대는 6개의 테마로 구성되었는데  제일 먼저, 우리나라 걸그룹의 원조인 저고리시스터의 이난영(목포의 눈물), 이난영의 딸들과 조카로 구성된 김시스터즈의 김숙자, 그리고 코리안키튼즈의 윤복희, 이시스터즈의 김명자, 바니걸스의 고재숙, 마지막으로 희자매의 인순이를 주인공으로  해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오늘날 한국 걸그룹의 명성이 자자한데 그 시작점을 추적해 보는 아주 신박한 뮤지컬이었습니다. 저는 보는 내내 너무 즐거워하면서 동시에 선교의 관점에서 여러 장면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우선 이난영과 저고리시스터는 일제 강점기에 활동을 시작하여 식민지 시대가 주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아리랑과 같은 민족의 혼이 들어간 노래는 부르지 못하고 오히려 군국가요를 불러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무대의 인상적인 장면은 저고리시스터가 군국가요를 부르는데 이난영이 그 사이 사이에 들릴 듯 말듯 '아리랑'을 넣는 장면이었습니다. 19세기 그리고 20세기와 심지어 지금까지 식민지적 선교가 판을 치던 곳에 분명 여기 저기 현지인의 '아리랑' 숨소리가 사이 사이에서 터져 나왔을텐데 선교사인 우리들은 그 소리를 감지했었는지? 혹 지금도 곳곳에서 현지인의 그 숨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난영의 딸들과 조카로 구성된 김시스터즈가 미국으로 진출하여 그곳에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그들이 치른 희생을 알고서는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미8군과 더 나아가 미국문화에 맞춰 자신들을 바꿔야 했던 초기 걸그룹의 시간들은 마치 서구 중심의 선교 시대에 '국제적 표준'이라는 미명 하에 라면 하나 소리내어 먹지 못하던 저의 선교사 초년 시절이 떠올라 씁쓸했습니다.

 

일제는 물러갔지만 걸그룹이 자유 시대를 만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니걸즈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쌍동이 자매는 토끼소녀, 토끼자매 그리고 다시 바니걸스로 이름을 바꿔야 했던 군사 독재 시절이 있었습니다. 우리 말을 써야한다는 당위성이 있었겠지만 어떤 당위도 그것이 억압이라는 방식으로 다가 올때는 결코 자발적 주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시대의 자유를 상징하는 '김추자'의 등장과 억압은 더욱 그랬습니다. 제게는 이것이 마치 선교사 시대는 지났지만 자국의 보수적인 교단들이 외국의 신학을 빌어  억압하는 것으로 비춰졌습니다. 여성들에게 여전히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기독교도 예외는 아니고요.

 

희자매의 인순이는 다문화 시대를 맞이한 지금의 상황을 대변했습니다. 물론 인순이씨가 실제로 겪은 것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겠지요. 오늘날 우리의 이웃으로 다가온 수많은 친구들을 대표해 차별을 온몸으로 맞으며 살아 온 인순이씨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어느 골목에서 그 차별적인 시선을 견디며 어려운 생활을 꾸려나가는 여러 이주민들에게 주님의 긍휼이 넘치길 기도합니다. 공연은 여기에서 이야기를 마쳤지만 저는 오늘날 이름을 날리고 있는 '뉴진스'라는 걸그룹을 생각했습니다.

 

얼마전 한 TV  예능프로그램에 5명의 소녀들로 구성된 이 걸그룹이 출연했는데 누가 외국에서 왔는지 누가 토종 한국인인지 구별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강원도, 경상북도, 인천, 베트남-호주, 호주-한국 등 다국적 소녀들이 포함된 걸그룹이지만 그 프로그램에서 조차 출신을 묻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걸그룹이 다른 걸그룹과 다른 점은 여느 걸그룹처럼 관객을 향해 공연을 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냥 서로 서로를 보면서 자신들이 즐거워하며 공연을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한국은 이런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보는 듯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마침 뮤지컬 엔딩 크레딧에 걸그룹의 이름이 쭉 소개되면서 제일 마지막에 뉴진스의 이름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공연을 보면서 생각한 것은 여기까지 였습니다.

 

하지만 그후에 새로운 기사를 보게되었습니다. 한국인과 외국인이 섞여 있는 걸그룹은 물론이고 이제는 걸그룹 멤버 전부가 외국인인 그룹들도 이미 나오고 있으며 또 새로운 그룹이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사회가 선교보다 앞서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샬롬.

 

11월 1일

권성찬 드림

 

추신: 10월 한달간 진행한 걷기 참여는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걷기가 10월 31일 자정으로 종료되고 모금은 11월 10일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두 날짜가 다르다 보니 약간의 혼선이 생겼습니다. 혼선을 드린 점 사과드리며 그 동안 열심히 걸어 주신 분들과 헌금으로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모금액 8억에 아직 이르지 못했지만 곧 채워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