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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이방 과부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2024년 새해입니다. 지난 한해 계시는 곳에서 존재로, 삶으로, 그리고 사역으로 힘쓰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새해에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소망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유대 회당에서, 당연히 유대인들일 청중에게 하시는 말씀에 예수님은 이방 과부를 언급하여 회중을 화나게 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눅4:25-26)  

 

도대체 왜 예수님은? 더 나아가 하나님은 도대체 왜 룻을 포함해 이렇게 이방 과부들을 잊을 만하면 한번씩 등장시키시는 걸까요? 물론 저 같은 선교사는 '하나님이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것을 선포하신거다'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그런 면이 당연히 있겠죠. 그러면 그 이야기를 유대인에게 할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하시면 좋을텐데요. 굳이 유대인들을 짜증나게, 그것도 소위 '첫 설교'에서 말입니다. 영남에 가서 호남에 백화점을 세우겠다고 공약하고 호남에 가서 영남에 신공항을 공약하면서 표를 바라는 정치인은 없겠죠?

그래서 성경에 등장하는 이방과부들의 역할을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무엇인가에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그 선택의 원인이 자신들에게 있지 않고 오히려 무엇인가를 위해 선택받았음을 바르게 인식한다면 더욱 겸손하고 더욱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성숙의 길로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이 우쭐함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대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하나님의 선택이 결국 왜곡된 특권의식으로 변질되어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한번씩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드러내시기 위해  특권의식이라는 오염이 없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한 자연인'을 등장시켜 하나님의 아름다운 색깔을 마음껏 그려내시는 듯 합니다. 스스로의 색에 오염되지 않은 맑은 검은 색 한줄, 그것이 이방과부가 가진 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 단색에 하나님의 총천연색을 입힘으로 더욱 또렷하게 하나님이 보이게 하십니다. 결국 이방과부의 역할은 선택받은 자들에게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로 느껴집니다. 

새해에는 이방과부의 자리, 이방과부의 시각으로 돌아가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과 사역에서 하나님이 빛나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사시는 그런 한 해를 다짐해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보냄받은 본래의 의미로 다시 돌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2024년 1월 1일

권성찬 드림

 

추신: GMF 가족의 새해 인사를 카드로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