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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성경과 소설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3월입니다. 대한독립만세^^  곳곳에 꽃이 피었습니다. 선생님들의 삶과 사역에도 꽃이 피기를 소망합니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빈센트 반 고흐를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가 최근 책 하나를 읽으면서 좀 더 관심이 생겼습니다. 해서 얼마전 영국 출장 길에는 시간을 내어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고흐의 작품 5점과 코톨드 갤러리에 있는 다른 2점을 감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틈틈히 고흐에 대한 동영상 등을 보고 있습니다. 

 

 

개혁교회 목회자 였던 부모, 거의 유일하게 교감했던 동생 테오, 그리고 테오에게 보내는 고흐의 편지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여러번 표현했던 것, 목회자가 되려고도 했고 탄광촌에서 선교 사역을 했던 것 등은 최근 화가가 아닌 또 다른 모습의 고흐에 대해 알게 된 내용입니다.

고흐의 이야기를 읽으며 제 눈에 띈 작품은 '성경이 있는 정물'이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

 

성경이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Bible), 1885

 

이 작품은 고흐가 개혁교회 목회자였던 아버지가 소천하고 약 반년 후에 아버지를 추모하며 그린 그림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또 해석이 상반되는 경우도 많아, 역시 그림은 해석의 자유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단 그림은 커다란 성경책과 그 밑에 아버지가 반대했던 에밀졸라의 소설이 놓여 있는 구조입니다. 성경책에는 이사야 53장을 표시했고 에밀졸라의 책은 '생의 기쁨'이라는 책입니다. 저는 이 그림이 기본적으로 늘 성경을 기반으로 살아갔던 아버지를 상징하는 크고 반듯한 성경과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는 작고 낡고 비스듬히 놓인 소설을 보여 줌으로써 아버지에 대한 추모와 존경을 담고 있다고 봅니다. 그림 자체에서 아버지를 비난한다던지 비꼰다는 것은 부모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자주 언급했던 고흐의 마음가짐을 생각할 때 별로 바른 해석이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고흐와 마음과 상관없이 이 그림이 저 자신과 자식을 가진 여러 선생님들에게 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할 도전을 준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전에 제가 아는 아주 경건하신 목사님과 그 목사님의 사춘기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들이 집에서 유행가를 들었는데 목사님이 아들에게 그런 노래 듣지 말라고 해서 아들이 아주 반항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벌써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요즘 이런 부모는 찾기 어렵죠.  

고흐의 부모는 가톨릭 지역에 간 개신교 목사이니 당시의 종교 분위기를 생각하면 오늘날 선교사와 같은 신앙을 가진 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교지에서 살아가는 아주 절제된 삶이었을 것입니다. 개혁교회이니 아주 뜨겁고 보수적인 신앙이었을테고요. 그러니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고흐를 수용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해서 고흐는 부모의 지지를 잘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책의 그림이 좀 더 작고 에밀졸라의 책이 좀 더 컸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부모가 좀 더 수용적이고 고흐의 생각을 지지해 주는 그런 환경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입니다. 신앙과 예술이 서로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임을, 예술이 배제된 신앙은 하나님 창조하신 만물의 풍성함을 제한하고, 신앙이 배제된 예술은 중심을 잃은 방만함이 될 수 있기에 함께 가야하는 것임을 부모가 좀더 여유있게 봐 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입니다. 동생 테오가 형에게 주었던 지지의 절반만이라도 부모로부터 받았으면 에밀졸라의 책이 저렇게 쪼그라 들지는 않았을텐데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가 너무 크면, 부모의 신앙이 너무 투철하면, 게다가 보수적이면 아이를 문제아로 보는 위험이 있습니다. 가끔 선교사 자녀들 중에 선교를 아주 부정적으로 보는 자녀들을 대하며 갖게 되는 아쉬움입니다. 선교사 자신의 신앙을 양보할 필요는 없지만 자녀의 시각에서 그것만 부각되지 않도록 좀 더 수용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저 스스로에게 그리고 여러 선교사님들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하긴 고흐의 예술이 당시에 너무 급진적이었고, 선교사였던 탄광촌에서 광부들과 동일하게 낮은 삶을 살겠다고 한 것이 오히려 선교사의 품위를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거리의 여인을 아내로 맞겠다고 했으니 당시의 사회와 종교와 가정의 분위기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성경책의 크기와 소설책의 크기를 가지고 고흐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을 적었으나 이제 글을 마감하면서 위 그림은 고흐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이런 고백을 드린 것이라 생각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제 중심에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제 삶의 변할 수 없는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버지께서 물려 주신 유산입니다. 다만 그 기쁨을 모든 일상에서 그리고 저의 그림을 통해 드러내기 위해 캔버스를 삶의 현장 삼아 붓질 하나 하나에 온 힘을 기울입니다. 아버지 감사했습니다." 샬롬.

 

고흐의 입장을 이해하려 했던 돈 맥린(Don McLean)의 빈센트를 링크합니다. Stary Stary Night...

 

 

2024년 3월 1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