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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충암고 추억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1일이 아닌데 '품에서'가 도착해서 혹 벌써 새해인가라며 당황하진 않으셨나요? '품에서'는 때로 사안이 있을 때도 보내곤 하는데 이제까지 아마 두 번 정도, 함께 사역하던 선교사님이 소천했을 때와 아프간 사태가 났을 때 날짜와 상관없이 보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고국의 상황을 보며 아파하고 긴장하며 더불어 기도하고 계실 줄 압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계엄"을 경험했던 저는 그 두 글자에 아직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주님의 통치를 간절히 바라고 믿으며 잠시 옛 일을 회상해 보려고 합니다.

 

1977년, 저는 그 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신일고는 당시 야구부를 창단하자 마자 신흥강호로 알려지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고교야구가 요즘 프로야구만큼 인기가 있던 시절인데 신일고는 75년 야구부를 창단하고 그 이듬 해에 황금사자기를 우승하며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77년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저희는 봄 부터 계속 야구의 메카였던 동대문구장(현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을 내집처럼 다닐 정도로 매 대회에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나중에는 수업에 지장이 있어 학교에서는 4강에 올라가야만 단체 응원을 가기로 정할 만큼 야구를 잘했습니다. 그 해 드디어 황금사자기 대회를 맞이하자 전년도 우승팀으로 한껏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21번이 김남수 선수 같네요.

 

대회 8강에서 충암고를 만났습니다. 충암고의 당시 감독이 '야신'으로 알려진 김성근 감독이었습니다. 이 경기는 특별히 중요했는데 그 이유는 당시 대학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당시 선수들은 전국대회에서 4강에 한번이라도 올라가야 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4강이 선수들에게는 예비고사였습니다 (그 때는 예비고사를 통과해야 대학에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대학에 가지 않고 프로 야구로 직행하지만 그 때는 아직 프로야구가 없었고 고교 졸업 후에 대학을 거쳐 실업야구로 가는 것이 당연시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해서 설명이 길어지네요. 여하간 4강에 드는 것이 고교 선수들에게는 목숨을 건 유일한 목표였습니다.

 

저희 신일고는 이미 앞선 대회에서 4강에 올라간 적이 있어 경기에 져도 대학과는 무관했지만, 충암고 선수들, 특히 3학년 학생들은 그 때까지 4강에 들지 못했기에 꼭 이겨야 하는 경기였습니다.

저희는 1루쪽 외야에 자리를 잡았고 충암고는 3루쪽 외야에서 응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일고에도 유명한 선수들이 많았지만 충암고에는 당시 기세봉이라는 뛰어난 투수가 있었습니다.

9회까지 노히트 노런, 그러니까 안타를 치고 나간 선수가 한명도 없을 정도로 잘 던지고 있었고 2:0으로 충암고가 이기고 있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9회말, 한번 남은 신일고의 공격만 잘 막으면 대학에 갈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9회말에도 한 타자를 잘 처리하고 두 타자만 남겨 놓은 상황에서 연속 안타를 맞아 두 명의 주자가 나갔고 김남수라는 키 큰 타자가 타석에 섰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홈런을 외쳤고 거기에 호응하듯 김남수는 다음날 신문에 '9회말 끝내기 역전쓰리런 홈런'이라는 길고 큰 제목을 만드는 놀라운 일을 해냈습니다. 충암고 선수들은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일어나지 못하고 울었습니다. 후에 어느 인터뷰에서 김성근 감독이  처음 눈물을 흘린 경기라고 한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팀이 이긴 것은 너무 기쁜 일이었지만 대학에 가지 못하게 된 충암 선수들의 쓰러진 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이겨서 기뻤고 이겨서 슬펐습니다. 

 

다행히 그 해에 한 대회가 더 남아 있었습니다. 봉황대기. 1977년 봉황대기 8강에서 운명처럼 신일고와 충암고가 다시 만납니다. 이번에도 지면 충암 선수들은 대학 진학이 안되는데 또 신일고를 만난겁니다. 당연히 트라우마가 있었겠죠.

이번에도 팽팽했습니다. 9회까지 2:2, 연장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연장 10회에서 다행히(?) 충암고가 3:2로 이겼습니다. 충암고는 여세를 몰아 그 해에 봉황대기 우승을 차지합니다. 신일고에게 설욕하고 대학에 가게 된 충암 선수들의 기쁨은 하늘을 찔렀을 것 같습니다. 저희는 져서 슬펐지만 또한 져서 기쁜 그런 날이었습니다.

 

충암고가 신일을 이기고 4강에 오르더니 마침내 우승까지 했습니다.

 

야구장에서 모교를 응원하느라 목이 터져라 외쳤고 다음 날 목이 쉬지 않은 놈(?)들은 눈총을 받아야 했던 그 치열한 시절에도 우리는 이겨서 기쁘고, 이겨서 슬퍼했으며, 져서 슬프지만, 져서 기쁘기도 했던, 그런 순수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순수가 없는 치열은 동물의 왕국이고 치열이 없는 순수는 버려진 폐가와 같습니다. 47년의 세월은 어느새 우리를 괴물로 만든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어떻게 그 치열과 순수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요? 치열만 가득해 보이는 오늘 그 잃어버린 순수가 이 사회와 나라와 온 세상에 회복되는 그런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신일고 학생이나 충암고 학생 모두 교복을 입고 거리를 다녀도 해를 입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날이 속히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곧 성탄입니다. 주님이 마침내 오시면 일어날 일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6-9).

 

그 때까지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겠습니다.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 샬롬.

 

2024년 12월 10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