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잘 지내시는지요? 한국은 꽃과 연초록의 잎들로 인해 아름다운 계절이 한창입니다. 선생님들 계시는 곳은 우리나라처럼 4계절이 뚜렷한 지역이 많지 않겠지만 그곳은 그곳대로 아름다움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그곳의 아름다움이라 여기실 것이라 믿고요.
얼마전 지인 목사님들과 서울 시내에서 아름다운 사역을 하는 기관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듣고 근처 책방에 들렀습니다. 주관적이겠지만 좋은 책들을 선별하여 전시하고 판매하는 그런 책방이었습니다. 마침 얼마전 기사를 보고 관심을 갖고 있던 책이 있어 골랐더니 함께 간 목사님께서 선물로 사주셨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 선교 현지에서 경험했고 그 동안 잊고 있었던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책을 읽는 것이 아까운 감정이었습니다. 물론 선교지에서 가졌던 아까운 감정은 조금 다른 것이긴 했습니다. 지금처럼 온라인 시대가 아니었고 책을 편하게 구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었기에 파키스탄을 거쳐 인편으로 들어 온 몇달 치 구독 잡지와 몇몇 책을 반갑게 받아 아껴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 읽어 버리면 더 이상 읽을 것이 없기에 내용과 무관하게 책에 대해 물리적으로 아까운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지금도 선교 현지에서 보고 싶은 책들을 편하게 보지 못하고 혹 한 두권 받아도 아껴 읽을 모든 선생님들에게 책을 후원하는 분들이 생겨나기를 바랍니다.
이제 국내 본부에 있는 저는 시간을 내어 언제든지 '알라딘' 중고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 볼 수도 있고 성찰에 도움이 되는 책을 고르고 살 수 있기에 더 이상 책을 아껴 읽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책은 오래 잊고 있었던 아까운 감정을 되살려 주었는데 그것은 책을 못 구해서 가지는 물리적 아까움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에서 읽기에 아까운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미국 뉴욕에 살며 책을 좋아하는 헬렌 한프라는 무명 방송 작가와 영국 런던의 중고 서점에서 일하는 프랭크 도일이라는 사람이 책을 주문하고 보내주며 주고 받은 편지를 엮은 책입니다. 오래전 번역되어 출판된 이 책을 이제야 알게된 것에 대해 자책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조금 더 성찰한 후에 다음 달 '품에서'를 통해 간단히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마침 월말에 영국 출장이 있어 지금은 없어진 그 서점 자리를 방문도 해 보고 정리해 볼 예정입니다. 다만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드리며 글을 맺고 싶습니다.
책의 내용이 너무 좋아서 밤을 새워서라도 읽고 싶은 그런 좋은 책들이 있습니다. 물론 좋은 책이라는 것은 각자의 관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인 생각이겠죠. 좋은 드라마도 그렇습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계속보게 되는 그런 시리즈 드라마들이 있습니다.
좋을 책을 만나면 저희 경우는 책의 한 구석에 메모를 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생각을 넓혀주고 생각을 깊게 해주는 그런 책을 좋은 책으로 저는 꼽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갖게 된 책은 좋은 책으로 분류하기에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뒷 내용이 궁금해서 멈추기가 어려운 것은 위에 말한 좋은 책과 같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읽어서 끝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읽는 것이 아까웠습니다. 그러다보니 읽고 싶지만 읽지 않고 그냥 그 책을 가까이 두고 또 가방에 늘 가지고 다니며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다행히 같은 작가가 쓴 다른 책이 있어 얼른 주문하고 마찬가지로 아껴가며 읽고 있습니다.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폭삭 속았수다'라는 드라마의 경우도 어떤 분들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멈추지 못하고 밤을 새워가며 끝까지 보았다고 합니다. 좋은 드라마인 거죠. 그런가 하면 너무 궁금하지만 16번의 에피소드로 끝나는 것이 너무 아까워 참으면서 천천히 보았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까운 드라마인 셈입니다.
책을 사람에게 비유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선교사는 현지에서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말하자면 좋은 선교사란 어떤 선교사일까 하는 생각입니다.
현지인들이 막 찾아와 배우고 싶고 함께 성경 공부도 하고 싶고 그렇게 선교사가 가진 모든 내용을 알고 싶어한다면 정말 좋은 선교사겠죠. 이런 선교사가 되는 것, 우리 모두가 알듯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좋은 선교사보다 아까운 선교사라는 범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함께 있고 싶은 선교사, 뭘 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시간이 좋고, 시간이 가는 것이 너무 아까운 선교사.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죠?
그런데 저의 경우 저는 그런 사람이 못되지만 제 주변에 있는 분들 중에 그냥 그 분들과 함께 있으면 좋고, 헤어질 시간이 되면 아까운 그런 분들이 계신 것을 보면 그런 선교사가 되는 것이 영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선생님들, 현지의 동역자들이 여러분과 함께 있는 시간이, 허비한다는 의미에서 아까운 것이 아니라 너무 좋아서 아까운 그런 선생님들이시길 바래봅니다. 저도 노력해 보겠습니다. 노력으로 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달에는 런던에서 이 작가의 편지를 모은 그 책에서 느낀 것을 좀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개봉박두^^ 샬롬.
2025년 5월 1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