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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엔딩 크레딧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더운 지역에서 사역하는 분들에게 "무더위에 얼마나 수고가..."라는 인사를 드리기가 민망할 정도로 국내 기후가 변했습니다. 기후만 보면 이제 우리나라는 동아시아가 아니라 동남아시아로 편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잘 지내셨나요?

 

며칠 전 아내와 요즘 상연하는 에니메이션 영화 '킹 오브 킹스'를 보았습니다. 이웃 집 TV를 모여서 보던 시절에 접한 어린 시절의 만화 영화는 '아톰', '황금박쥐' 등 일본의 손이 많이 닿은 영화들이었습니다. 그러다 성인이 되어 접한 디즈니의 '알라딘'으로 부터 시작된 미국식 에니메이션은 혼을 쏙 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번 '킹 오브 킹스'는 영국의 찰스 디킨스의 책에서 영감을 받긴 했지만 한국인 장성호 감독과 많은 한국인 스텝들이 이루어낸 세계적인 에니메이션입니다. 앞에 K-가 들어가는 한국 문화 열풍에 이제 에니메이션을 더하게 되었습니다. 상영관에서의 상영이 얼른 끝나고 저작권을 풀어 온 열방에 복음이 전해지는데 이 영화가 사용되기를 장성호 감독이 바라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선교지에서 한 때 '예수영화' 열풍의 시대가 있었는데 훨씬 현대적인 감각으로 선교지에서 접촉점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영화 킹 오브 킹스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에 만든 사람들과 기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소개되는 소위 '엔딩 크레딧'에 주연 배우 및 감독 등 주요 기여자만 소개되던 시대가 지나고 참여한 모든 사람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해 올리는 문화가 만들어 지긴 했지만 그것을 끝까지 앉아 일일이 보는 관객이 많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그것을 읽고 나오는 습관을 가지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면 엔딩 크레딧을 뒤로 하고 영화관을 빠져 나와 화장실을 향하는 것이 오래된 습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엔딩 크레딧과 더불어 쿠키 영상 등을 그 마지막에 넣는 영화도 있고 해서 영화가 확실히 끝난 것을 확인할 때까지 참으면서 엔딩 크레딧을 어느 정도 보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 완전히 이름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앉아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영어로 아주 작게 기록되어 있어 사실 읽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앉아 있게 된 것은 저희가 간 작은 영화관이 영화를 마치고도 불을 켜지 않은 이유도 있었고 또한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점점 그 보이지 않는 이름 하나 하나가 만일 내 아들이라면, 내 며느리라면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엔딩 크레딧

 

 

몇 주전에 제대 후 40년 만에 백령도를 다녀왔습니다. 복음이 일찍 소개된 섬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 저희 때 백령도를 3무 섬이라 불렀습니다. 그 첫번 째가 절이 없다는 것입니다. 곳곳에 교회가 있습니다. 나머지는 신호등이 없다는 거고 마지막은 당연하게 해병부대가 있으니 귀신이 없다는^^ - 군 시절에 섬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떤 기독교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고 그 후에도 막연하게 듣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비록 1박 2일이지만 차를 렌트해서 구석 구석을 다니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엔딩 크레딧을 보면서 백령도에 다녀 온 일이 생각났습니다.

만일 천국 어딘가에 기록실이 있어 '백령도'라는 필름이 있다면 그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어떤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중국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허드슨 테일러가 닮고 싶어 했다는 칼 귀츨라프의 이름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1832년 백령도 중화동에 들어와 한달 채 안되는 시간이지만 복음을 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토마스의 이름도 큼지막하게 기록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1866년 평양 대동강에서 순교한 것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 전에 토마스는 1865년 백령도 두무진으로 들어와서 약 2개월간 머물며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황해도 소래교회의 도움을 받아 첫 교회 공동체를 세운 허득이라는 인물, 그를 도와 백령도에 첫 교회가 세우도록 공헌한 황해도 소래교회의 서상륜, 서경조 형제, 후에 백령도의 교회를 방문하여 세례를 주었다는 언더우드 등, 그리고 우리가 아는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은 많은 기여자들의 이름이 그 엔딩 크레딧에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 하나 하나는 그저 몇초 안에 휘익 올라가버리는 이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애가 달려 있는 그런 기여자들이라 믿습니다.

 

토마스가 들어 왔다고 알려진 백령도 두무진 포구

 

오늘 여러분이 섬기는 그 국가, 그 종족, 그 마을, 그 공동체의 기록 영화가 천국의 개봉관에서 상영되는 날, 여러분의 이름이 그 엔딩 크레딧에 멋지게 기록되어 아름답게 빛날 것을 소망합니다. 비록 아프가니스탄에서 변변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나왔지만 저와 아내와 아이들의 이름이 엔딩 크레딧 한 구석에 있을 것을 꿈꿔 봅니다. 그런 생각이 들어, 보이지 않는 스크린의 그 이름들을 보면서 영화관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샬롬.

 

2025년 8월 1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