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때론 무더위로 때론 무서운 비로 놀라게 했던 여름이 가끔 뒷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곧 시야에서 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잠시 출장 온 영국은 낮 최고 20도, 꿈의 온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제 리더십 훈련을 섬기고 있다보니 일년에 몇 번씩 영국 출장이 있어 '품에서'에서 자주 영국을 언급하게 됩니다. 출장 길에 잠시 시간을 내어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램스게이트 (Ramsgate)에 다녀왔습니다. 우리나라의 포항 혹은 울산 정도되는 동남쪽 해변입니다.
이 곳은 23살의 고흐(Gogh)가 잠시 있었던 곳입니다. 화랑에서 그림 판매 일을 하던 고흐는 성경 말씀에 좀 더 깊이 들어가면서 판매에 흥미를 잃어 결국 해고 됩니다. 그리고 1876년 바로 이 곳 영국 램스게이트에서 10살-14살 아이들 24명이 있는 기숙학교의 보조 교사로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미 불어, 독어, 영어에 유창하던 고흐는 언어와 다른 몇 과목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 곳에서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여기 학교 창문에서 바라본 풍경을 작게 그려봤어. 아이들은 부모들이 방문을 마치고 역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이 창문에서 바라본단다. 아마 많은 아이들이 창문을 통해 바라본 그 광경을 평생 잊지 못할 거야. 비가 오던 이번 주, 해질녘에 가로등 불이 켜지고 그 불빛들이 젖은 거리에 반사되던 것을 네가 봤어야 하는데..."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 31 May 1876)
11살 때 2년간 기숙사 생활을 했던 고흐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아쉬워하는 비슷한 나이의 그 아이들을 보며 그 마음을 공감했을 것이기에 비 내리는 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그의 가슴 속으로 훅 들어온 듯 합니다.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흐드러지는 불빛 혹은 별빛이 아이들의 눈물에 어린 또는 젖은 거리에 비친 모습이었나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자주 경험하시는 그 이별의 장면이 저의 오래된 기억을 소환했습니다.
저는 6학년 때 부모님과 헤어져 서울로 전학을 왔습니다. 기숙사 학교는 아니지만 서울 사는 친척 집을 옮겨 다니며 학교 생활을 했습니다. 부모와 헤어지는 것이 너무나 싫었던 그 기억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 두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면서도 아이들과 떨어진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좋지 않은 아프간 상황 때문에 결국 들어간지 6개월만에 8살된 큰 아이를 이웃나라인 파키스탄의 기숙사 학교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한 달을 같이 보내고 헤어지던 날, 제 마음이 너무 무너져 아이의 관점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때 제 나이가 30대 중반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고흐가 묘사한 대로 창가에 서서 부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던 그 아이의 관점을 보지 못했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 전화나 우편 시스템이 없어 인편이 올 때를 기다려야 하는 당시 상황에서 그로 부터 한 달을 좀 넘겨 아이의 첫 편지를 받았습니다.
"...첫날밤에 굉장히 울었어요.(엄마 떠난날 밤) 하지만 이젠 괸찬아요... 엄마, 아빠, 용수가 떠난후 엄마, 아빠, 용수를 많이 생각해요..."
이 편지를 받고서야 울음을 참고 저희를 배웅하던 아이의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선교사 자녀들이 많아져서 일까요?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요즘 더 많이 듣게 됩니다. 오늘도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선생님들, 이제 아이들과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선생님들... 부모의 나이 혹은 아이들의 나이와 관계없이 헤어지는 일은 어려운 일입니다.
오늘도 어디선가 창문 너머로 가족의 뒷 모습을 보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이런 바램을 가져 봅니다. 그 광경이 아이들에게 슬픔이라는 긴 여정의 시작이 되겠지만 그 여정을 통과한 아이들이 그 슬픔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세상의 많은 풍경들을 넉넉히 이해하는 마음을 기르게 되기를, 그리고 그 모든 여정이 주님의 품 안에 있음을 인식하는 날이 꼭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헤어지는 날 그냥 돌아서지 말고 아이를 꼭 안아주고 그렇게 주님께 맡기고 돌아서시길... 샬롬.
2025년 9월 1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