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한 해 동안 계신 곳에서 성실하게 자리를 지켜낸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구합니다. 새해에는 또 어떤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지 기대와 설렘을 안고 시작합니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콜럼버스의 달걀'이라는 글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누구도 세우지 못했던 계란을 콜롬버스가 깨뜨려 세웠다는 이야기에 대한 성찰 글로 기억합니다.
계란을 세우는 목표를 가진 사람들에게 콜럼버스는 영웅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계란을 깨뜨려 세운 콜럼버스를 대단하다고 여기는 사람 혹은 문화는 계란을 세우려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문화속에서 '계란을 왜 세우려고 해?'라고 질문하면 부적응자로 취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문화가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 힘이 미치는 영역에서는 비록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계란을 세우려는 사람, 그래서 깨뜨려 결국 성공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못해 박수를 쳐야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계란을 세우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문화, 계란은 세우는 용도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 계란 속에는 병아리를 품고 있는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문화에서는 굳이 계란을 세우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계란을 깨뜨려 세우는 행위'가 결코 용납될 수 없고 오히려 그런 사람을 '야만적'이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오랫동안 선교를 지배해 온 서구 문화, 그 기저에 있는 크리슨덤 패러다임은 눈에 보이는 여러 공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계란을 세우려는 맹목적인 시대, 상황에 따라서는 야만의 시대로도 불릴만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무조건 세워야 한다는 것은 맹목이고 세우기 위해 깨뜨리는 것은 야만입니다.
'꼭 그래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없이 세우고야 말겠다는 열정과 깨뜨려서라도 세운다는 수단의 정당화 등으로 인해 그런 방식은 이제 더 이상 변호할 수 없는 패러다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힘이 강할때도 그런 모순을 본 사람들이 없지 않았지만 워낙 기세등등하여 감히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제 세계 곳곳에 교회가 세워진 소위 '글로벌 교회 패러다임'의 시대가 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감춰있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아직도 곳곳에서는 세우겠다고, 깨뜨려 세웠다고 자축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계란을 생명으로 보는 사람들의 눈총이 따갑습니다. 부러워하지 않을 뿐더러 더 이상 모르는 척 피해버리지도 않고 '아직도 저러고 싶을까?'라는 질책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계란은 생명을 품고 있다는 아주 당연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가 주로 '현지인'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들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란을 세우는 용도로, 즉 전략용이라고 전제했던 문화에 사는 우리는 아주 깊은 성찰을 통해서야만 조금씩 '생명용'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올해는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계시나요? 혹 그 세우신 계획이 계란을 세우는 맹목과 야만의 연장선 상에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우리가 세우는 계획 저변에 있는 전제, 그 생각을 품고 있는 패러다임이 무엇인지를 좀 더 깊게 성찰하는 첫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계획이 '생명용'이 되기를 간절히 바래 봅니다. 샬롬.
2026년 1월 1일에
권성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