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한국은 겨울다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계신 곳에서 강건하시기를 빕니다.
연말에 개봉한 '신의 악단' 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같은 영화를 영화관에서 두 번 본 것도 오랜만이었습니다. 물론 두번째는 '품에서'를 쓰기 위한 목적이 있긴 했습니다. 표가 막 뿌려진다는 소문도 있던데 저는 두 번 다 예매해서 갔으니 '공짜'라는 강요에 의해서가 아님도 밝혀 둡니다.
기독교 영화가 개봉관에 걸린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대놓고 '은혜'스러운 영화가 일반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연극이던 영화던 기독교 예술이 가지는 전문성의 부족이 이 영화에서도 언뜻 보였지만 감동을 얻기에 충분했음도 사실입니다.

영화는 북한의 찬양단이라는 다소 의외의 이야기를 소재로 합니다.
외국 기관으로부터 2억불이라는 엄청난 지원을 받기 위해 조건을 수용하는데 그 조건이란 평양에 두 개의 교회를 짓고 부흥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흥회가 진짜인지를 감별하기 위해 국제 기독교 연맹에서 실사를 온다는 겁니다. 시간은 2주. 다급해진 북한 정부는 보위부에 명령을 내리고 보위부 중에서도 지하교인들을 찾아내 체포하는 박교순 소좌에게 이 과업이 주어집니다. 무명의 악단인 승리 악단으로 찬양단을 급조하고 이 악단 단원들이 한국의 찬양단 영상을 보면서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연기 연습을 합니다. 찬양싱어가 부족해 이들을 감시하는 박교순 소좌와 김태성 대위가 싱어로 참여하면서 이야기는 반전을 맞이 합니다.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연기를 연습을 하다가 마침내 냉혈한처럼 소개된 박교순 소좌와 김태성 대위가 믿음을 갖게 되고 순교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충분히 스포일러가 된 듯하여 이만 줄입니다. 정말 가슴 따뜻하고 은혜로운 영화인데 연말에 개봉했지만 잘 안 알려지다가 입소문을 타고 점점 역주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곧 100만을 초과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영화는 실제로 외국의 원조로 지어진 평양의 칠골교회, 그리고 그 교회에서 있었던 빌리 그래엄의 부흥회를 모티브로 제작하게 되었고 그 부흥회에 참석한 북한 주민 중에 정말 교인은 없었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오래전 남북관계가 좋았을때 갔었던 북한 방문이 생각났습니다. 그 때 물론 칠골교회도 방문했습니다.

그 때 저희들을 환영하면서 칠골교회 교인 한 분이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고 너무나 은혜롭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지 않으려고 마음을 꼭 붙잡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진짜처럼 연기하는 가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방문을 마치고 나와서 함께 간 분들 사이에서 그 은혜로운 찬송이 가짜냐 진짜냐 논쟁이 있었고 전체적인 결론은 '가짜'라는 것이었습니다. 아! 투철했던 반공정신...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그 때 그 결론에 상당히 동조했던 저의 '가벼움'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마치 날 때부터 보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서 부모의 죄인지 그 사람 자신의 죄인지를 묻는, '죄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제자들의 가벼움 같은 것이었습니다. 다시 그 상황이 된다면 감별사의 역할보다 진심으로 함께 찬양을 부르며 경계의 눈보다 비록 잠시지만 은혜를 누리며 그들을 대할 것 같습니다.

몇 가지 더 나눕니다.
악단원들이 촛불을 켜고 기도모임을 연습하다가 이게 숨어서 연습할 일이 아니라 불을 켜고 해도 된다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당의 명령'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의 명령을 자각하면서 당당해 지는 그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하고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도 생각이 났습니다. 그 '당당함'이 어떤 사람들처럼 '무례함'으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겠지만 '주님의 명령' - 명령이라는 말이 적절하지는 않지만 - 이라면 어떤 상황에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 해서는 안되고 겸손한 당당함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가짜 찬양단인 '승리 악단'이 점점 '신의 악단'으로 변모해 갑니다.
연기라는 말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 보았습니다.
연기한다는 말은 긍적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단순히 이야기가 아니라 상연을 전제로 한 대본이고 모든 성도는 작가이자 연출가이신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여 세상에서 그 의도를 감동있게 연기 해내어야 하는 배우입니다. 그런 점에서 '연기'는 '진심을 다하는 삶'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로 악단이 한국의 은혜로운 찬양단을 흉내내어 하는 연기는 '연기하네'라는 말과 같이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하지만 명령으로 시작된 그 연기, 그리고 흉내를 너머 더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열심을 다하는 연기의 과정에서 그들은 믿음을 갖게 되고 긍정적 의미의 연기자로, 고난을 회피하지 않는 진실한 성도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영화가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 참여한 배우들 중 믿음이 없던 분이 연기하면서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말하자면 '흉내내다 믿음을 갖게 되는 역할'을 연기하다 믿음을 갖게 되는 현실인 셈입니다.
그러니 선교지에서 주변에 믿음을 '연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나무랄 것이 아니라 그 연기가 긍정적 연기로 변하도록 도와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선생님들을 이용하려는 가짜 성도들이 있다면 그들이 그 연기 과정에서 진짜 연기자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기에 진짜 배우들, 목숨을 내걸고 하늘의 뜻을 수행하는 진성 배우들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박교순 소좌의 변화도 사실은 몰래 성경을 소지하고 믿음을 지키다 순교한 교순의 어머니, 그리고 믿음이 발각되어 교순에 의해 처형 당한 사촌 형이라는 진짜 신앙인들이 주변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임을 영화는 보여 줍니다.
그러니 가짜가 문제가 아니라 주변에 진짜가 없다는 것이 문제인 셈입니다. 영화는 단순히 가짜들이 연기 연습하다 진짜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진짜들의 희생이 가짜를 진짜로 바꾼다는 이야기를 깊이 전하고 있습니다.
선교사의 역할은 감별사가 아니라 스스로 진짜가 되어 지금은 가짜인 그들과 함께 있어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영화는 마지막에 순교한 이들이 천국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나 봅니다. 그러지 않았어도 되는데...
영화 중 가장 집중이 어려웠던 장면이었습니다. 없었으면 더 좋았을 마무리입니다.
여우가 강을 다 건넜는데 그만 꼬리를 적시고 말았습니다. 샬롬.
2026년 2월 1일
권성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