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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이란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아프가니스탄으로 가기 전에 저는 사실 이란을 가려고 했고 소속 단체의 허락을 받아 이란을 가려고 준비하던 중 아프간 소식을 듣고 선교지를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못 이룬 꿈처럼 이란은 늘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란과 아프간이 같은 페르시아어권이라 이웃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해서 오늘은 이란에 대해 아는 몇 가지를 나누어 볼까합니다.

 

신약성경이 이란어인 페르시아어로 번역된 것은 영국인 선교사 헨리 마틴(Henry Martyn)에 의해서입니다. 원래 인도에서 사역하던 그는 1811년에 이란의 시라즈(Shiraz)라는 곳으로 가서 언어를 배우고 신약성경을 번역했습니다. 번역된 성경을 왕에게 헌정하기 위해 페르시아의 예술가에게 부탁해 아름다운 페르시아 필체로 두 권을 준비했습니다. 그 번역된 성경을 가지고 마틴은 시라즈를 출발하여 왕이 있는 테헤란(Teheran)으로 갔으나 왕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영국대사가 있는 타브리즈(Tabriz)로 향했습니다. 왕은 오직 대사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1100km의 먼 여정이었습니다.  

 

힘든 여정으로 인해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른 마틴은 대사에게 전달했고 그 성경은 후에 왕에게 전달됩니다. 성경을 받아 읽은 왕은 그 책의 내용에 대해 그리고 아주 이해하기 쉽게 한 번역에 대해 극찬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왕이 극찬을 할 때 마틴은 타브리즈를 떠나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로 가는 도중 이미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마틴이 번역한 성경의 요한복음 1장 1-3절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이 이란에서 선교하기 시작한 것은 1835년부터입니다. 전통적인 방식대로 학교와 병원 그리고 선교 센터를 세워 선교했습니다.

 

1887년, 루이스 에셀스틴이라는 미국 선교사가 이란에 갔습니다. 에셀스틴은 호라산이라 불리는 동쪽 광활한 지역에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고 수백만의 무슬림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곳을 개척하기 위해 메쉐드로 갔습니다. 길이 척박하던 시대에 말을 타고 한 달이나 걸려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이 오면 거룩한 땅 메쉐드가 더럽혀 진다고 믿는 현지 무슬림들이 그를 죽이려하였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져 테헤란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개척을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1911년 에셀스틴은 메쉐드로 다시 갔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어 머리는 벗겨지고 대신 수염이 붉게 자랐습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고 누군가 관심을 보이면 가지고 간 페르시아 성경을 주었습니다. 마틴이 번역해 놓았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한 번은 이야기를 나누던 무슬림들이 관심을 보여 성경을 나누어 주는데 무슬림 성직자(물라)들이 와서 화를 내며 방해했습니다. 그 때 에셀스틴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와 물라 중 누가 옳은지 여러분이 판단하세요. 저들은 자기들의 턱수염을 붉게 염색했는데, 선지자 무함마드가 붉은 턱수염을 가졌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자기들도 그렇게 보이려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내 턱수염을 붉게 해 주셔서 염색이 필요없습니다. 그리고 물라들이 쓰고 있는 저 큰 터번을 벗기면 머리를 밀었을 것입니다. 무함마드가 머리를 밀었다고 해서 자기들도 그렇게 하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머리를 밀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어요.” 그러면서 모자를 벗어 대머리를 보여 주자 모든 사람들이 박장대소했고 물라들은 어쩔 줄 몰라 떠나 갔습니다.

 

1916년에 롤라 호프만이라는 젊은 의료 선교사가 메쉐드에 합류했고 에셀스틴과 함께 일했습니다. 그 때 그 지역에 전염병이 돌았고 병든 현지인들을 온 힘을 다해 치료하다가 두 선교사 모두 전염되었는데 호프만은 회복했으나 에셀스틴은 1918년에 소천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1919년에 미국인 선교사 윌리엄 밀러(William M. Miller)가 메쉐드로 갑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선교 이야기를 들으며 헌신했고 신학교 시절 무슬림 선교사로 유명한 사무엘 즈웨머의 강의를 들으면서 무슬림을 위한 선교사로 헌신하고 마침내 메쉐드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는 1919년 부터 1962년까지 43년을 이란 선교사로 사역했습니다.

이란 동부는 아프가니스탄 서부 지역과 접경한 지역입니다. 1921년 밀러 선교사는 아프간과 더 가까운 자볼이라는 곳으로 선교 사역을 갔다가 내친김에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가게 됩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에는 선교사가 한 사람도 없었고 완전히 닫힌 지역이었기 때문에 밀러 선교사가 늘 아프간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두 나라의 국경은 마치 우리나라 임진강처럼 헬만드 강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밀러 선교사는 수영을 해서 아프간 땅을 밟았습니다. 가져갈 것이라곤 광야의 마른 풀 외에는 없어 풀을 한 줌 챙겨서 다시 건너왔습니다. 밀러 선교사는 동역자들에게 보내는 기도편지에 그 마른 풀 하나씩을 넣고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것이 아프가니스탄의 첫 열매입니다!".

 

밀러 선교사는 이란에 가기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 도전을 했는데 그 영향을 받아 선교사가 된 분 중에 윌슨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윌슨 선교사도 이란으로 갔는데 밀러 선교사와는 반대쪽인 북서부의 타브리즈로 갔습니다. 페르시아 성경을 번역한 마틴이 왕에게 성경을 전달하기 위해 갔던 바로 그곳입니다. 

 

밀러 선교사가 수영을 해서 아프간 땅을 다녀오던 1921년, 타브리즈에서 사역하던 윌슨 선교사가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크리스티 윌슨(J. Christy Wilson)입니다. 윌슨 선교사네 집에서도 늘 아프간을 위해 기도했기에 어린 크리스티 윌슨은 아프간에 대해 듣고 기도하며 자랐습니다. 그 크리스 윌슨이 후에 아프간 선교를 개척하고 처음으로 자비량 선교(Tentmaking)라는 용어를 사용한 선교사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역사는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세미한 그러나 분명한 선으로 연결되어 이어집니다. 

미국이 겸손하던 시절, 헌신된 미국 선교사들이 말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 이란에 복음을 전했고 그렇게 복음을 받은 사람들을 통해 복음이 이어져 그동안 박해 속에서도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나라 안에서 모든 것이 차단된 채 오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복음은 기독교를 가장한 외세의 강력한 힘에 의해서 전해지는 것도 아니고, 내부의 강력한 독재에 의해서 막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은밀하게, 그러나 위대하게 전해진 복음, 그 복음을 오늘날 간직하고 있는 이란 내부의  주님의 사람들, 누룩을 품은 그들에게 주님의 평안이 있기를 소망하며 그 누룩이 그 땅에서 부풀어 오르기를 기도하며 그들에게 시편의 말씀을 전합니다. 샬롬.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 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62:1-5)

 

2026년 5월 1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