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덥네요. 더 더운 곳에서 사역하시는 선생님들을 생각하며 견딥니다.
책을 읽다가 그 속에 예화로 등장한 '제멜바이스'라는 사람의 이름을 처음 듣게 되었습니다. 의사인 그 사람의 이름이 교과서에 나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과인 제게는 전혀 기억에 없는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집단적 사고를 추구하는 세상에서 다른 것을 관찰하고 새로운 관점을 갖는 사람의 특징을 이야기하는 『이향인』이라는 책에 하나의 사례로 그의 이야기가 등장했는데, 관심이 생겨 이곳저곳 찾아보니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그를 '산모의 구세주'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세균에 의한 감염 등에 무지하던 시절, 헝가리 출신의 제멜바이스는 오스트리아 빈의 한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빈(비엔나)에는 두 개의 산부인과 병동이 있었는데, 산모들 중에 출산 후 감염에 의해 열이 오르고 사망에 이르게 되는 '산욕열' 사망자가 무척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제1병동의 사망률과 제2병동의 사망률이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었습니다. 제멜바이스는 그 두 병동의 차이를 면밀하게 관찰했습니다. 시설 등 여건에는 차이가 없는데 왜 그렇게 사망률에 차이가 날까? 관찰 결과, 두 병동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제1병동에서는 교육받는 의대생들이 출산을 돕고 있었고, 제2병동에서는 교육받는 산파들이 출산을 돕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 의사가 시신을 부검하다가 손을 베이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의사는 얼마 후 사망하게 되는데, 부검 결과 그의 증상이 산욕열로 사망하는 산모들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을 제멜바이스는 발견합니다. 여기에서 그는 의대생들이 시신 해부를 하던 손을 씻지도 않은 채 산모들을 진찰했던 것이 원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시신을 접할 일이 없었던 산파들이 있던 제2병동에서 사망률이 낮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제멜바이스는 의대생들이 해부를 마치고 산모에게 올 때 반드시 염화석회수로 손을 씻도록 소독 대야를 설치했고, 그 결과 산욕열로 인한 사망은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눈부신 결과에도 불구하고, 헝가리 출신 비주류 의사였던 제멜바이스의 주장을 수용하는 일은 오스트리아의 주류 의사들에게는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 주장을 수용하는 순간, 자신들이 손을 씻지 않아 그동안 수많은 산모를 죽였다는 비난과 죄책감을 감당해야 했으니까요. 결국 주류 의학계는 그의 주장을 터무니없는 것으로 일축하고 그를 쫓아냈습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돌아간 제멜바이스는 한 작은 산부인과 병원에 부임했습니다. 그 병원 역시 당시 산욕열이 만연했으나, 그가 부임한 이후 5년간 900명이 넘는 출산 중 산욕열 사망자는 단 8명뿐이었다고 합니다. 병이 거의 사라진 것이죠. 그는 이 결과를 토대로 『산욕열의 원인, 개념과 예방』이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류 의학계와의 외로운 싸움 속에서 그의 정신 건강은 피폐해졌고, 결국 동료들과 가족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오스트리아로 가족 여행을 갔다고 속아서 정신병원에 강제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그는 병원을 탈출하려 시도하다 경비원들에게 심한 구타를 당했고, 그로 인한 상처가 감염되어 결국 패혈증으로 보름 만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가 평생을 바쳐 막으려 했던 감염증으로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세균에 대한 이해가 의학계의 정설이 된 것은 그가 죽고도 한참이 지난 후였습니다.

세심한 관찰과 성찰, 그리고 통찰은 때로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류가 담합한 견고한 틀과 기득권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산모의 생명을 구했으니, 긴 역사의 지평에서 보면 그는 진정 바른 일을 한 셈입니다.
선교지에서 깊이 성찰하고 통찰하는 일 역시, 기존의 선교 방식을 관성적으로 반복해 온 집단에게 따돌림을 받는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이 사례가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향해 가는 우리의 여정에는 반드시 필요한 일임을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사역에서 성찰을 포기하지 말고 바른 방향 찾는 일을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지금 내가 가진 견고한 틀, 선교에 대한 확신이 어쩌면 깨져야 하는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번쯤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얼마 전 첫 손녀를 얻고 건강한 며느리를 생각하니, 새삼 제멜바이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샬롬.
2026년 7월 1일
권성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