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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반공/선무당 19: 선교란 무엇인가에 당(담)구기

선교란 무엇인가? 2. 전도

GLF의 임태순 선교사님이 요약한 것을 올립니다. 도움되기를 바랍니다.

스토트, 크리스토퍼 라이트. [선교란 무엇인가?] (IVP, 2019) 3-4 요약

 

l  임태순/ 2019 08 19

 

책은 스토트와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함께 공저한 책이라기 보다는, 로잔 언약 직후 1975년에 출간한 스토트의 ([현대 기독교 선교]) 내용과 40 년이 지난 , 스토트의 후계자인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스토트가 제시한 주제 설명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덧붙인 책이다. [현대 기독교 선교]에서 다룬 선교, 전도, 대화, 구원, 회심 5개의 주제에 대한 스토트의 주장을 그대로 싣고, 장의 논의에 대해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동일한 주제에 대한 1970년대 스토트의 견해와 21세기 복음주의의 지도자 사람인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관점을 비교해 있다는 면에서 흥미롭다. 또한 지난 45 동안 복음주의 선교신학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가를 보여준다는 면에서도 유익하다.

사람은 각각 1974 로잔언약과 2010 케이프 타운 서약 작성을 주도한 복음주의 지도자이다. 때문에 책의 토론 내용은, 1970년대 작성된 로잔언약이 2010 케이프타운 서약에서 어떻게 발전 변화되었는가를 비교해 있게 준다. 현대 복음주의의 선교신학적 관점이 지난 세기 동안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가를 가늠해 있게 준다.

2010 케이프 타운 서약은 1974 로잔언약과 동일한 내용을 변화된 시대상황에 맞춰 재해석한 것인가? 아니면 사이에는 본질적인 선교신학적 관점의 차이가 존재하는가? 라이트는 전자의 입장에서 토론을 진행하고 있으나 관점에 따라서는 사이에 매우 중요한 관점의 변화가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몫이라 있다.

 

3 전도 ( 스토트)

선교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세상 속으로 보내셔서 하라고 하시는 모든 아우르는 상당히 포괄적인 단어이다.” The word mission is properly a comprehensive word, embracing everything that God sends his people into the world to do.

(*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가지이다. “하나님이 세상 가운데 하라고 하신 모든 (전도와 사회참여) 이야기한 것이고, 다른 가지는 자기 백성을 보내서 교회가 세상 가운데 행하는 모든 것이다. 오늘날 전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하나 후자 대해서는 Missio Dei 관점과 비교하여 토론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

 

전도의 우선성 (The Priority of Evangelism)

선교는 전도와 사회참여 모두를 포함한다. 그러나 교회가 희생적으로 감당하는 선교사역에서 전도가 최우선이다” (in the church’s mission of sacrificial service evangelism is primary)라는 로잔언약 6항에 동의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질문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복음을 모르거나 거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것만큼 인간 존엄성에 파괴적인 것이 있을까? 또 우리는 어떻게 정치적, 경제적 해방이 영원한 구원만큼 똑같이 중요하다고 진지하게 주장할 수 있을까?” (70-71)

스토트는 전도의 긴박성 대한 로잔언약 내용을 인용한다. “목표는, 가능한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모든 사람이 좋은 소식을 듣고, 깨닫고, 받아들일 기회를 제공하는 이다.” (로잔언약 9)

전도의 의미 (Meaning of Evangelism)

전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나? 전도는 헬라어로 Euangelizomai (유앙겔리조마이), “좋은 소식 (Euangelion) 가져오거나 선포하는 뜻한다. 좋은 소식의 내용이 중요한데 뒤에서 다룬다.

 

l   전도가 아닌 것들

(1)    전도는 결과의 측면에서 정의되어서는 안된다. (회심자를 얻는 상관없다.) 전도는 결과에 상관없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본질은 복음의 정확한 선포에 있다.

-          J.I. Packer 정의에 대한 비판- “so to present Christ Jesus . . . that men shall . . . 중요한 것은 복된 소식을 정확히 알렸는가에 있다. 듣는 자의 반응 여부는 전도와 무관하다.

(2)    전도는 방법의 측면에서 정의되어서는 안된다. 방법은 매우 다양할 있다. 본질은 메시지가 정확하게 전달되고 있는가 있다. (명확한 메시지 전달을 위해서는 언어화 Verbalization 반드시 필요하다.)

l   복음이 무엇인가를 다루기 전에 논의해야 가지 질문

(1)    신약성경에 하나의 분명한 복음이 있는가?Is there in fact one New Testament gospel?신약성경은 확고부동하고 정형화된 표현을 제시하지 않는다. 상황, 성령의 계시에 따라 다양한 표현이 존재한다. 사도의 접근은 상황에 따라 달랐다.

-          바울의 복음” (My Gospel 딤후 2:8)이란 표현은 복음의 다양한 접근을 암시한다.

-          시간이 지남에 따른 복음에 대한 이해와 설명의 방식에 발전이 있었다. 바울의 초기 서신과 후기 내용에서 복음을 다루는 방법 달라졌음을 있다.

-          그러나 동시에 다양한 형태로 설명되기는 하나, 복음에 대한 하나의 기본적인 사도적인 전통 있었다. (“There is only one gospel.” 1:7)

(2)    신약의 하나의 복음은 문화적으로 조건화되었으므로 일시적인 것이냐 아니면 변치 않는 것이냐? (The second preliminary question is whether the one New Testament gospel is transient because it was culturally conditioned, or whether it is changeless.)

-          하나님의 계시는 이해되기 위해 문화 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문화적 상황에 맞는 정확한 전달을 위해 복음의 상황화는 피할 없다.

-          그러나 복음의 본질은 변할 없다. “유일한 하나의 복음이 있으며 본질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75) 그리고 변할 없는 복음의 본질은 성경에 기초한다. (We need both to be true to the Bible, and also to be timely in our culture.)

l 정리하면, 복음은 하나의 불변의 내용이 존재한다. 그러나 표현과 전달 방식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될 있다.

 

l  유일하고 변함없는 신약 복음이란 무엇인가? (What is the one, the changeless New Testament gospel?)

-          복음은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이다. “God’s good news is Jesus. Jesus Christ is the heart and soul of the gospel.” 바울은 로마서에서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하나님의 복음” ( 1:1-4)이라고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          예수가 어떻게 기쁜 소식으로 전해졌는가? C.H. Dodd 사도들에 의해 예수에 대한 소식이 어떻게 전달되었는가를 연구했다. 사도들의 선포/설교에 나타난 케리그마 내용을 재구성함으로써 기쁜 소식(복음) 내용이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복음의 내용을 구성하는 5가지 요소(5 elements).

(1)    복음의 사건들 (The Gospel Events):

-          사도들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을 확고한 역사적 사실 제시했다.

-          초기부터 역사적 사건이 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음 분명히 했다. 그것은 대속의 메시지 & 죄용서의 메시지였다.

n  십자가의 죽음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양으로서의 죽음이었다.

l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진행된 사건이었다.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이뤄진 ( 2:23)이었다.

l   예수를 하나님의 고난 받는종으로 표현 ( 3:13, 4:27 & 8:32-33) 것이 증거이다.

l   십자가 죽음은 나무에 달아 죽인이란 신명기 말씀과 연결된다. ( 21:23) 우리 대신 저주를 받으심 보여준다.

n  부활 사건은 사함에 대한 확증이었다. (부활 사건의 신학적 의미)

l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 5:30-31)

(2)    복음의 증거 (The Gospel Witness)

l 예수의 복음 사건들은 구약성경 말씀대로 이뤄졌다. 다음 밀씀들이 증거다. -  성경대로” (고전 15:3-4)

-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누가복음 24:44-47)

l 예수 복음사건은 사도들이 눈으로 (직접 경험한) 증거이다. ( 24:48)

(3)    복음의 확언 (The Gospel Affirmations)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의 현존 대한 확증이다. 예수는 지금도 살아계시고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며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어떤 분이고 우리 위해 현재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 확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4)    복음의 약속 (The Gospel Promises)

복음은 예수님이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가지 선물 선포를 포함한다.

n  죄사함: 3:19 & 10:43)

n  성령- 거듭남과 성령의 내주를 통한 새로운 , 미래 기업의 보증

(5)    복음의 요구 (The Gospel Demands): 복음은 다음과 같은 요구를 포함한다.

-          회개: 죄에서 돌아서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삶의 방식,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포함한다.  

-          믿음- “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 16:31)

-          (공적) 세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

-          요구에 응답해야 긴급성, 심판자 예수의 재림에 대한 선포 포함한다.

 

전도의 상황 (The Context of Evangelism)

1.       전도 다른 이들과 좋은 소식을 나누는 이다. 좋은 소식은 복음, 예수님에 관한 소식이다. 예수에 대한 좋은 소식은, 1) 그분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것이고, 2) 결과로 지금 주와 구세주로 통치하고 계시며, 3) 회개와 믿음을 명하시고, 4) 회개하고 믿고 세례 받는 모든 자들에게 사함과 성령의 선물을 주신다는 것이다.

전도는 복음을 전하는 이상이다. 모든 것의 결과로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 시작되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인류의 안으로 들어왔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For in fulfillment of Scripture God’s reign has broken into the life of humanity through the death and resurrection of Jesus. This reign or rule of God is exercised from the throne by Jesus, who bestows salvation and requires obedience. These are the blessing and the demand of the kingdom.

* 스토트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선포 복음의 내용에 포함시키지 않고, 복음 선포의 결과로 나타나는 전도의 상황으로 다룬다. 복음과 하나님 나라의 통치의 임함을 구분하여 설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토트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복음의 내용보다는 복음의 결과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류의 가운데 들어왔다는 무슨 의미인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와는 어떻게 다른가 

 

2.       전도가 행해지는 상황

(1)    존재 (Presence): 위임령의 단어는 선포가 아니라 가라였다. 이는 존재를 의미한다. 전도를 위해 교회는 매력적인 가시적 존재여야 한다.

(2)    설득 (Persuasion): 설득은 전도 자체라기 보다는 전도가 행해지는 상황이다. 설득하지만 전도의 결과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스토트는 로잔언약을 인용함으로써 그의 설명을 요약한다. “전도 자체는,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설득할 목적으로, 구세주요 주님이신 역사적, 성경적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But evangelism itself is the proclamation of the historical, biblical Christ as Saviour and Lord, with a view to persuading people to come to him personally and so be reconciled to God. (로잔언약 4)

 

4 전도에 관한 고찰 (크리스토퍼 라이트)

라이트가 정리한 스토트의 질문- “선교 고유의 총체적인 성격 뿐 아니라 그 총체성 안에서 전도의 우위성에도 헌신하는 이 이중적 헌신이 이론과 실제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가? , 그가 그 이후 몇 십 년 동안 여러 회의와 글에서 깊이 주의를 쏟은 주제였다.” (96)

How that double commitment both to the intrinsically holistic nature of mission and to the primacy of evangelism within that holism was to be worked out in theory and practice

-        이후 논의에서 선교의 총체성에 대한 논의는 충분이 다뤄진 것으로 보이나, 전도의 우선성이 유지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아 보인다. 장은 질문에 대한 크리스토퍼 라이트의 관점을 보여준다.  

앞에서 주장했듯이, 나는 총체적 통합적 선교의 의미를 정의할 , 전도의 우위성보다는 복음의 중심성 말하는 쪽을 선호한다. … 인간의 절박한 필요를 근거로 전도의 우위성을 주장하는 방식에서 강조점만 미세하게 바꾼 이다. …. 복음의 중심성을 말한다는 , 무엇보다 먼저 어려움에 처한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대한 성경 이야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의 구성 요소로서 위대한 성경 내러티브에 초점을 맞추면, 성경에 계시된 인간 삶에 대한 하나님의 선한 목적 미치는 모든 차원이 복음에 통합된다. 영적인 영역과 물질적인 영역, 영원한 것과 땅의 분리하지 않게 된다.” (96)

-        크리스토퍼는 미세하게 바꾼 것이라 하는데, 전도의 우선성을 복음의 중심성으로 바꾼 것은 대단히 변화로 보인다. 먼저 라이트는 전도의 문제를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운명 중심에서 인간 삶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 중심으로 바꾼다.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직면한 인간의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으로서 (인간의 운명 중심의) 전도와, 모든 사람들을 향해 은혜와 구원으로 접근하기 원하는 하나님 중심으로 보는 전도의 의미는 엄청난 관점의 변화이다. 두번째, 라이트는 신약 중심으로 시도한 스토트 복음정의, 구약을 포함하는 새로운 의미로 정의한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에 대한 메시지를 통한 죄사함, 하나님과의 화해 중심으로 정의되었던 복음에서, 피조세계 전체의 회복을 지향하는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전파하는 복음으로 바뀐다. 마지막으로 복음의 차원은 영적 차원과 물질적 차원을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새롭게 이해된다. 스토트의 전도의 우선성을 C. 라이트가 복음의 중심성으로 바꾼 것의 의미를 평가 필요가 있어 보인다. 스토트가 말하는 복음과 라이트가 설명하는 복음이 과연 동일한가 평가할 필요가 있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복음이다. “The Whole Bible Is God’s Good News”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복음이란 스토트의 말은 복음에 관한 새로운 관점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그것은 복음이라는 단어를 마치 구원 계획만을 의미하는 것인 사용하거나, 사람들이 죽을 하늘에서 자기 자리를 보증하는 방법을 제공하는 사소한 영적 법칙으로 사용하는 데서 돌아서라는 요청이었다.” (97) 복음은 성경 이야기 전체로 이뤄진 좋은 소식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Wright Stott 관점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복음은 예수이고 성경전체의 이야기는 예수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성경 전체의 이야기이다. “성경 전체가 복음을 구성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복음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알고 깨달을 있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98) (그런데 Stott 복음을 신약의 복음(New Testament Gospel)으로 설명했는데 부분에 대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스토트는 복음이 성경 전체를 포함한다는 주장 뒷받침할 증거를 가지 방식으로 제시한다. 하나는, 복음이 역사적 사건으로 설명한 부분으로,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신학적) 의미는 메시야에 대한 구약적 증거에 기초하고 있음 언급한다. 다른 하나는, 복음의 증거에서, 예수의 사건은 구약적 예언의 성취임을 증거한다.

그러나 C. Wright 스토트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안타깝게도, 구약성경은 복음의 소극적인 배경으로, 복음과 대비되는 들러리로, 실제로 복음이 그것에서 우리를 구해 내는 것으로 자주 제시된다.” (100)

구약의 이야기는 복음의 본질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주장한다.

물론 논지는 맞지만, 구약과 복음의 관계를 명확하게 하기에 충분하지는 않다. 구약은 그저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의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구약은, 전체 틀을 세워주는 아주 중요한 성경 이야기의 부분을 이야기해 준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사역이 이해되고, 그것은 모든 민족을 향한 좋은 소식이 된다. 전체 성경 이야기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세상과 인간, 그리고 둘의 미래를 이해할 때에만 복음은 좋은 소식이다. 성경 이야기로 이뤄진 성경적 세계관이 없다면 우리의 복음 이해와 제시는 결함이 있을 것이다.” (99)

 다시 말해, 복음이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 자체이며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승리의 부활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스토트의 의견에 우리가 동의하고 그렇게 주장해야 한다 해도 또한 창조에서 창조에 이르는 성경의 전체 이야기라는 틀에서 그리스도 이야기 보아야 한다. 나는 이것이 바울이 하나님의 모든 경륜/계획/” ( 20:27, 1:9-10; 1:15-23)이라고 언급했을 의미하는 바일 것이라 생각한다.” (101-102)

Wright 바울의 설교와 전체적인 사고 속에서 의미한 복음의 의미 Ben Witherington III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의 의미에 관한 연구를 인용함으로써 설명한다.

(바울의 사상이 기반한 하나의 이야기는) …. 아담에게서 인류가 시작된 때로부터 종말론적 아담에게서 절정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후까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이야기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창조와 피조물과 그들의 구속에 관한 이야기.” (102)

스토트는 오늘날 복음의 진리, 복음의 적실성,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잃은 보다 전도를 방해하는 것은 없다라고 하면서 전도의 긴급성과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린 안타까와 했다.

C. 라이트는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 상실에 대한 스토트의 말을 복음주의자들이 복음을 너무 편협하게 해석한 폐해로 해석한다. C. 라이트는 복음주의자들이 복음을 십자가 대속 사역을 믿음으로써 미래에 하늘에있을 것을 개별적으로 보증받는 의미로 받아들였다”(103) 비판한다.  

결과는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진보와 성장 신화를 밑에 깔고 살아가는,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과 주변의 우상 숭배적인 소비지상주의가 거의 차이가 없어 보이는 서구 기독교의 엄청난 혼합주의를 달리 어떻게 설명할 있을까? ‘복음을 믿는다 주장하는 이들조차도 복음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우주적인 차원까지 모든 차원에서 좋은 소식으로 만드는 유일한 이야기, 성경 이야기를 알고 믿고 그에 따라 살아간다는 표지를 거의 보이지 않는다.” (102)

내세적 확신에만 매달려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땅에서의 삶은 세속주의, 우상 숭배적인 소비지상주의의 혼합주의적 경향을 보이며, 우주적인 회복으로서의 복음의 의미 간과한다고 주장한다.

케이프타운 로잔 III 준비 모임인 2008 치앙마이 모임에서 온전한 복음 의미를 정리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A.      복음은 성경 전체의 시각에서 예수의 이야기를 한다.

B.      복음은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새롭게 화해한 인류를 창조한다.

C.      복음은 십자가의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D.      복음은 윤리적 변화를 낳는다.

E.       복음은 진리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악을 폭로한다.

F.       복음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말미암아 우주적 능력을 가진다.

 

나라의 복과 요구

스토트는 전도의 상황 설명하면서 전도에 하나님 나라 선포를 포함시켰다. (91) 라이트는 스토트가 전도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하나님 나라 선포 덧붙인 것은 하나님 나라의 선포 복음에 있어서 중요한 영역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스토트의 주장을 받아들여 라이트는 하나님 나라 선포를 복음이라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왕이시라는 단순한 선언은, 예수님이 요구하신대로 회개와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반응할 때까지는, 개인들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것과 분의 통치가 궁극적으로 모든 창조 세계와 모든 나라에 미치리라는 것은 좋은 소식이다. … 그런 의들에서 하나님 나라의 선포는 의심할 여지없이 복음이다.” (109)

-          스토트의 하나님 나라 선포언급 (91) 복음의 의미에 대한 논의를 마친 전도의 상황 논의할 언급된 것이다. 스토트가 하나님 나라 선포 복음의 내용으로 설명했다는 라이트의 주장은 평가가 필요하다. 스토트는 하나님 나라 선포 복음의 내용보다는 전도할 복음의 내용과 함께 전해야 내용으로 설명한 것으로 이해된다.  

하나님 나라 선포가 복음으로 해석될 있다면, 복음이 선포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 믿는 자들의 순종과 윤리적인 삶의 변화가 동반해야 함을 의미한다. C. 라이트는 자연스럽게 사회적 참여 역시 복음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토트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과 주님으로 여겨 순종으로 그분께 굴복하는 사이를 갈라놓는 이들을, 마땅히 크게 책망한다. 그는 믿음을 통해서만 은혜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교리를 수호하려는 좋은 동기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믿음과 순종을 따로 떼어 놓는 것은 (마치 다른 하나 없이 하나를 가질 있다는 듯이) 비성경적이라고 권고한다.”  

 

토의 질문

1.       신구약 전체의 이야기를 복음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C 라이트 주장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를 믿는 믿음을 통한 사함과 성령을 받는 것을 중심으로 신약적 복음을 주장한 스토트의 견해와 달라 보인다. 스토트와 라이트의 복음에 대한 관점은 같은 범주인가? 아니면 본질적 차이점을 포함하는가?

2.       C. 라이트는 스토트의 전도에 대한 견해를 다루는 전도에 관한 고찰이라는 장에서 전도에 대해 거의 논의하고 있지 않다. 라이트의 전도에 관한 관점은 어떤 것으로 추정할 있는가?

3.       스토트는 전도의 차원을 로잔언약 4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께 나아가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설득할 목적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 내용을 인용해 설명했다. 반면에 C. 라이트는 개인적 차원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해보다는 우주적/사회적 차원의 화해와 구원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혹시 보편구원론의 전제를 인정하는 것으로 있는 여지는 없는가?

4.       복음을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신학적 의미로서 죄사함과 성령을 선물로 받음으로 설명하게 (윌라드는 형태를 우익의 복음이라 칭했음), 결과로 믿는 자의 땅에서의 삶이 복음과 소비지상주의의 우상숭배가 혼합되는 형태로 변질된다는 라이트의 진단에 대해 동의하는가? (103)

5.       스토트는 복음의 약속에서 가지 선물, 죄사함과 성령의 내주를 이야기한다. 다수세계 상황에서는 성령의 내주, 성령 안에서 주님과의 연합 등이 강조된다. 복음의 약속으로서 성령의 내주에 대한 라이트의 관점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