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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웃을 때와 울 때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에 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한국은 희망을 안고 5월을 시작합니다. 선생님들 섬기시는 나라도 여러분의 중보를 통해 그 지역 사람들과 나라과 강건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이야기와 많은 묵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후 계속해서 다양한 형식의 백서들이 나오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제게는 코로나가 발병한 우한을 향해 가는 중국 간호사들의 사진이 가장 인상에 남은 장면 중 하나입니다.

우한을 돕기 위해 삭발을 하고 떠나는 중국 간호사들이 엄지척을 하는 사진입니다. 그들은 웃고 있었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 위험한 곳으로 가는 그들은 울고 침통해야 마땅했습니다. 좋은 곳에 가는 것도 아닌데 엄지척이라니요. 잠시 잊고 있던 그들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또 다른 뉴스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 우한에 내려졌던 봉쇄가 해제 되었습니다. 우한의 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우한 공항의 모습에서 그 때 그들을 다시 떠 올렸습니다. 사명을 마치고 우한 공항을 떠나는 의료진의 모습이 소개된 사진입니다.

그들은 울고 있었습니다.

웃을 때와 울 때가 바뀐 그들의 모습을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울어야 하는 상황에서 웃는 사람들, 웃어야 될 것 같은 상황에 우는 사람들. 바른 길을 가는 사람들, 진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늘 이렇게 세상의 기대와는 다른 가 봅니다.

서기 301 경 당시 20세 청년이던 파코미우스는 이집트 사람으로 로마 황제의 명에 따라 전쟁에 징집되었습니다. 나일 강에 위치한 테베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징집된 사람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로마 군사들은 그들을 감옥 안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런 그들을 밤에 찾아 가서 먹을 것과 마실 것과 필요한 물건들을 전해 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위험을 감수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했던 파코미우스는 그들이 그리스도인들이며 누구에게든 이렇게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감동으로 인해 징집에서 풀려난 후 세례를 받고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가 수도원 제도를 시작한 성 파코미우스입니다.

좀 더 힘을 내자는 상투적인 말로 이만 맺습니다. 파코미우스와 초대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상처럼 살던 삶이 이제는 가끔 뉴스에서나, 그것도 때로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에게서 보게 되는 아주 희귀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파코미우스를 만드는 그 밤의 그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0년 5월 1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