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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택'도 없는 소리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에 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바야흐로 '택'의 시대입니다.
한 때 잘 생긴 배우 박보검이 '응답하라 1988' 에서 '택'이라는 역할로 국민 남동생이란 호칭을 얻어 심장어'택'이라는 신조어가 나오더니 요즘이야말로 '택'의 시대가 왔습니다.

우선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재'택'근무가 늘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접촉 (contact)을 피하게 되자 언'택' (untact)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언'택'은 사실 모더니즘적인 용어 입니다. 주류가 나머지를 비주류로 정해버리는 관점을 가진 모더니즘에서는 컨'택'이 아닌 것을 비컨'택', 즉 언'택'이라는 부정적인 용어로 부르게 됩니다. 그러자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용어가 등장합니다. 포스트모던니즘의 특징은 상대적 소수가 각자 나름의 긍정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해서 언'택'이 아니라 온'택'(ontact), 즉 실제 만나지는 못해도 온라인상으로 서로 연결하는 그런 긍정적인 용어가 등장했습니다. 언'택'과 온'택'이 단순히 '어'와 '오'가 바뀐 것 같지만 그 안에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여러 경로로 온라인 콘서트 등을 알려 주는 정보를 받으셨을 줄 압니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트로트도 방청객을 부를 수 없게 되자 온라인으로 연결해서 오히려 전 세계에서 참여하는 새로운 연결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추세는 더욱 확장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택'의 시대에 선교는 무엇을 묵상할 수 있을까요?

 

이번에 코로나를 겪으면서 제 주변의 몇몇 교회들의 상황을 보게 되었습니다. 좀 사이즈가 있는 교회는 이 온'택'을 하기 위해 창의적인 것들을 많이 만들었고 상당한 효과를 거두기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작은 교회들도 온라인 예배를 하기 위해 새로운 장비와 기술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제 기억에 남는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이 교회는 온'택'과 관련해서 별 한게 없습니다. 하지만 모이지 못하니 지출은 적고 그럼에도 수입은 그대로여서  오히려 남은 예산으로 인근 교회들을 도왔다고 합니다. 그 교회를 잘 아는 저의 입장에서 그게 당연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평소에도 가족같은 교회였으니까요. 컨'택'이 어려워질때 온'택'을 생각해 내는 것이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물음은 우리가 대면하여 만나던 때에 실제로 심층적인 만남이 있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코로나 이전에 물리적 컨'택'은 있었으나 진정한 의미의 컨'택'은 사실상 없었던 것이 아닌지를 온'택'의 시대에 반추해 보아야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선교지를 잠시 떠나야 해서 문제라면 이미 거기 있어도 문제가 아닌가 반추해 보아야겠죠. 얼마전 기도편지를 보내신 한 선교사님은 이번 사태로 그 간의 관계를 다시 점검하게 되었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만일 그 동안 '너와 나의 관계'가 인격적이지 못하고 그다지 영향을 주지 못하는 형식적 관계였다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굳이 온라인 영상을 통해서까지 서로를 만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너와 나의 관계'가 인격적이었다면 서로 만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온라인에 영상물이나 소식이 올라오기를 사모하며 기다릴 것입니다."

제자들을 떠나셔야 했던 주님은 이미 맺은 깊은 관계가 있었기에 성령을 통한 온'택'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요? 만나거나 만나지 못하거나, 상황과 관계없이 실제로 깊은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면 재'택'이든 컨'택'이든 언'택'이든 온'택'이든 모두 '택'도 없는 소리로 들립니다. 샬롬.

2020년 6월 1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