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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여호와의 명절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에 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타향에 있으면서 쓸쓸해지는 시간 중 하나가 명절입니다. 통신의 발달로 영상 통화까지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보아도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을 대체할 순 없겠죠. 코로나로 인해 많은 선생님들이 고국에 와 계시긴 하지만 이번 만큼은 이동을 자제해 달라는 당국의 요청에 따라 오늘 추석도 이전같은 분위기는 아닙니다. 따라서 비교적 시간이 남게 된 이 명절엔 평소 읽지 못한 책을 잡을 수 있으면 좋을 듯 합니다.

요한은 명절 중심으로 복음서를 전개해 가는데 명절이 나올 때 마다 '유대인의'라는 수식어를 사용합니다. '유대인의 유월절', 유대인의 명절' 등 말입니다. 혹자는 그래서 이 복음서가 이방인, 특히 아직 믿음을 갖지 못하고 구약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위해 쓰여진 복음서라고 주장하고 그들을 위해 친절하게 '유대인의'라는 설명을 넣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구약을 통째로 바닥에 깔고 있는 요한복음의 특징을 생각하면 그런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그런 역할도 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기 위해 썼다고 말하는 것은 의도를 왜곡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구약을 녹여 넣었다고 보여지는 요한복음의 그 문구를 이해하려면 명절이 만들어지는 레위기를 보아야 하고 23장 이하를 읽어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지나치게 반복적으로 사용하시는 단어가 '여호와의'라는 수식어입니다. '여호와의 절기들', '여호와의 안식일', '여호와의 유월절', '여호와의 무교절' 등 반복적으로 그 수식어를 사용합니다. 다시 말해서 명절이라는 형식은 여호와라는 내용과 의미를 위해 주어져 있는 것이죠. 이스라엘이라는 계시 민족을 통해 여호와를 온 세상에 드러내시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오게 하시려는 그 하나님의 계획말입니다.

그런 그 '여호와의'라는 내용과 의미가 '유대인의'라는 형식으로 대체되어 형식은 남았으나 의미가 사라진 그런 행사를 반복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요한은 '유대인의'라는 수식어 하나로 '정신 차리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명절의 핵심인 것 처럼 보이는 양문을 지나쳐 복음이 필요한 베데스다로 말없이 가시는 예수님의 의도를 뒤늦게 알게 된 사랑하는 제자가 예수님의 마음을 대변하여 넣은 수식어인 셈입니다.

오늘 추석, 우리는 우리가 지키고 있는 여러 형식들 속에 어떤 내용과 의미가 남아 있는지 뒤돌아 볼 일입니다. '한가위만 같아라'했던 한민족의 명절, 그 속에 가족을 사랑하고 추수로 얻은 것을 공동체와 나누는 사랑이 여전히 남아 있기를, 그리고 이 민족 가운데 주님을 사랑하고 그것을 온 세상에 드러내는 뜨거운 마음이 남아 있기를 기도하면서 추석 인사를 드립니다. 샬롬.

2020년 10월 1일 추석에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