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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사람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에 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코로나 상황이 점점 좋지 않아 9월에도 밝은 소식을 드리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계신 곳에서 강건하시길 빌며 소식 전합니다.

얼마전 한 작은 모임에서 건축가의 강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라 자신이 지은 한 건물의 이야기를 통해 강연을 이어나갔습니다. 구조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건축가가 가진 사고의 구조라는 문과적인 요소와 건축이 지닌 물리적인 구조라는 이과적 요소를 버무리면서 진행한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그 중에 제가 유일하게 메모한 부분은 사실 건축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분이 지은 대표적인 건물은 한 스포츠 구단의 전용 경기장이었습니다. 위 사진에 있는 건물입니다. 너무 근사한 호텔급 경기장이었습니다. 생각이 잘 안 풀려 구단에 부탁을 하고 실제로 건물을 사용할 선수들과 며칠을 보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이런 자세만 봐도 좋은 건축가죠?

그런데 유독 한 선수, 선수들 중 나이가 많은 선배 선수가 질문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선수 휴게실에 세탁기 하나만 놓아 달라고 부탁을 하더랍니다. 그 전용 경기장에는 선수들 숙소도 들어가 있는데 호텔급이어서 옷을 벗어 놓으면 알아서 세탁해 주는 서비스가 포함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해서 도대체 왜 세탁기가 필요하냐고 물었답니다.

그 선수의 답은 호텔급 서비스를 안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자신의 빨래를 스스로 하며 자신도 보통 사람과 같은 일상을 살고 싶다는 이유였습니다. 프로 선수로서가 아니라 그냥 나도 하나의 사람이다라는 평범함을 느끼며 살고 싶다는 바램이었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호텔도, 외식도 우리의 집과 집밥이 있기에 훌륭해 보이는 것이지 날마다 호텔이고 날마다 외식이라면 늘 좋을까요? 아! 없어서 못 먹는다고요? 암튼, 저의 마음을 건드린 부분은 '사람됨'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저 내면에 '사람됨'을, 좀 더 성경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바 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었습니다.

선교사, 축구선수, 배구선수, 무슬림, 동성애자 등등 우리는 스스로 혹은 누군가 붙여놓은 딱지를 달고 살아가기도 하고 남에게 딱지를 붙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사람됨'에 대한 욕구가 있고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싶은 깊은 내면의 욕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스칼의 말이 생각납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은 오직 예수를 통해 계시된 창조주 하나님으로만 채울 수 있다 (There is a God shaped vacuum in the heart of every man which cannot be filled by any created thing, but only by God, the Creator, made known through Jesus).

딱지가 아니라 사람을 보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그 공간을 보는 사역자들이 되시길 소망해 봅니다. 샬롬

2020년 9월 1일

권성찬 드림

추신: 제 방에 걸려 있는 나단아 작가의 그림을 보탭니다. 제목은 '쉼, 일상의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