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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소이와 롤라드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에 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10년전 방영했던 '뿌리깊은 나무'를 혹 기억하시나요? 세종의 한글창제 이야기를 다루었던 그 드라마는 한글 창제를 둘러싼 왕과 사대부 간의 갈등을 그렸습니다. 사대부의 나라를 세우려 했던 양반 세력에 맞서 왕은 권력을 지키기 보다 오히려 백성에게 돌리려 했고 그 방안으로 백성이 읽고 쓸 수 있도록 쉬운 글을 만들었다는 설정이었습니다. 읽고 쓰는  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권력입니다. 문해율이 낮은 나라에서 사역을 하면 이 말을 실감합니다. 읽고 쓸 수 없다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역사에는 없는 '소이'라는 나인이 등장합니다. 한글 창제의 원리를 설명한 책을 해례라고 하는데 그게 없으면 한글을 못배운다고 생각한 반대파들이 해례를 찾아 없애버리려고 혈안이 됩니다. 그런데 해례가 책이 아니라 '소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드라마이긴 해도 '사람이 해례다'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성경적 가치입니다.

종교에 열심인 기독교 주류 세력이 이 사대부와 같이 못된 생각을 가졌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럴지 모르죠. 라틴어가 성경 원어도 아닌데 라틴어 성경만 사용해야 하고 다른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면 안되는 법, 지금 생각하면말도 안되는 법이죠. 그러다보니 자신의 언어가 아닌 라틴어를 모르는 여러 나라의 성도들은 말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불공정에 항거한 개혁자 중 '존 위클리프'가 있습니다. 1517년 루터의 개혁 보다 150년 앞선 시대에 영국에서 영어로 성경을 번역했으니 개혁의 샛별이란 별명이 어울립니다. 종교 중심 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앵글로색슨 족의 언어에 불과한 영어로의 번역은 신성모독이었습니다. 1415년 위클리프의 사상을 이어받은 체코의 얀 후스가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화형을 선고 받던 날 이미 소천한 존 위클리프도 함께 그 무덤을 파헤쳐 화형에 처하라는 결정이 납니다. 소천한지 40여년이 지나 영국 루터워스에 묻혀 있던 위클리프를 부관참시하여 그 재를 동네에 흐르는 개천 (스위프트)에 뿌렸다고 전해집니다. 영국에 잠시 있을 때 여러 번 그곳을 방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위클리프의 유골을 뿌린 루터워스에 있는 개천

 

위클리프의 생각을 이어받은 사람들은 박해 속에서도 영어로 설교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을 롤라드라 부릅니다. 성경을 소유할 수 없고 영어 성경이 불온서적으로 여겨지던 시대에 이들은 성경을 나누어 외우고 거리에 나타나 외운 영어 성경을 암송하고 사라지는 방식으로 말씀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 시대에 성경의 해례는 책이 아니라 사람이었던 겁니다.

오늘날 몇몇 극단적인 지역을 제외하고 성경 소유를 막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해례 혹은 사람이 성경이 되지 않고 복음이 전해지기는 어렵습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를 이 땅에서 온 삶으로, 말씀으로, 심지어 죽음으로 풀어내신 예수님은 참 해례였네요. 

사랑하는 선생님들, 계신 그 곳에서 말씀의  해례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무더운 8월에도 강건하십시오. 샬롬.

 

2021년 8월 1일

권성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