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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빠져야 할 때..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에 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오늘이 설날입니다. 고국이 더욱 그리워지는 시간이죠? 계신 곳에서 떡국이라도 드실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신정에 미루어 두었던 나이도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실감하는 경우가 일상에서 많이 생기지만 소소한 경우 말고 결정적으로 느낄 때도 있는데 저는 아마 몇 해 전 경험이 그 경우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저는 가장 자신있는 운동을 꼽으라면 족구입니다. 군에 갈때까지만 해도 족구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훈련소에서 족구를 잘하는 동기들은 고된 훈련대신 족구하러 가는 특혜(?)가 있더군요. 부러웠습니다. 서해 북쪽의 섬으로 배치를 받은 후 일상처럼 족구를 했습니다. 공격에 재능을 발견하고 늘 공격수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제대 후 복학해서는 학교에서도 시간이 되는 대로 족구를 했습니다. 복학생들이 족구를 많이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졸업 후 직장 생활로 족구를 잠시 쉬었지만 신학대학원에 진학하고 다시 족구를 했습니다. 군대만큼이나 족구를 많이한 시기가 신학대학원 시절이었습니다. 얼마나 족구를 많이 했는지 사람들이 저희 그룹을 운동권(?)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도 목회를 하고 있는 그 운동권 친구들과 자주 만날 정도니까 신대원 시절 얼마나 많이 운동하고 친했는지 알 수 있겠죠? 교회, 노회, 학교에서 체육대회에 족구가 있으면 늘 선수로 출전을 했고 나름 여러 기술로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로 나가면서 족구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날렵하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몇해 전 파송교회에서 선교대회가 있었습니다. 교회 교역자들과 선교사들 사이에 밥 내기 경기가 있었습니다. 교역자들이 젊고 족구를 잘하기도 했지만 선교사 팀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해병대 후배인 선교사가 수비를 든든히 맡고 있어서 해 볼만한 경기였습니다. 저도 물론 늘 하던대로(?) 공격을 했습니다. 나이가 든 선교사치고는 공격을 제법했기에 감탄사도 여기 저기서 들렸습니다. 하지만 계속 지기만 했습니다. 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안 되었습니다. 누구를 교체해야 되나 하고 생각하면서 다른 후배들의 위치를 바꾸어 보기도 했으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빠져야 되는게 아닌가?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빠지면 점수 차이가 더 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일단 물러났습니다. 수비를 하던 해병대 후배가 공격을 맡고 다른 선교사가 수비로 들어 갔습니다. 그러자 경기가 제법 팽팽하게 되었습니다. 수년 만에 귀국하여 모인 선교사 팀이 늘 교회에서 족구를 하는 교역자팀을 결국 이기지는 못했지만 제가 빠지고 나서는 그런대로 해 볼만한 경기를 했습니다.

당시는 웃고 말았지만 제게는 다소 충격이었습니다. 족구에서 내가 빠져야 하는 경우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승리의 경험이 많았고 다들 그렇지만 한창 때는 공격이 상당히 날카롭기로 유명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빠지니까 좋아지다니... 인정하기 힘들었지만 현실이었습니다. 나이 든 저의 공격은 족구를 웬만큼 하는 젊은 교역자라면 힘들이지 않고 받을 수 있었던거죠. 발을 높이 들어 때린 공격은 사실 네트에 걸릴만큼 낮은 공격이었고 '빵'하고 때린 공격은 사실 '뽕' 정도에 불과했던 겁니다. 마음에서 완전히 동의가 되었고 그래서 더 충격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사실 족구계(?)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탁구로 전향하여 하수(?)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어떤 영역에서는 원숙해 지겠지만 자신이 빠져야 할 자리가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남을 빼기전에 나를 빼는 지혜가 있기를 바래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샬롬.

 

2022년 2월 1일 

권성찬 올림

 

추신: 저는 그래도 아들에게 족구를 세습하지는 않았습니다. 각자 좋아하는 운동은 다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