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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뒷 모습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에 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10월입니다. 모두 푸르러 구별하기 어려웠던 나뭇잎들이 하나씩 자기의 색을 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가을은 구별의 계절, 조금 더 해석을 붙이면 심판의 계절이란 생각이 듭니다.

마침 파송교회의 선교대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참석하면서 매일 아침 1부 2부로 진행되는 새벽예배 중 5시에 시작되는 1부 기도회 뒷자리에 앉았더니 연로하신 성도님들의 뒷 모습이 보였고 그 분들을 뵈니 오래된 기억들이 소환되었습니다. 이번이 교회 창립 50주년이고 저는 46년전 중학교 3학년말에 이 교회에 왔습니다. 앞에 앉으신 연로하신 성도님들은 제가 학생 시절, 저희를 지도하던 집사님들 그리고 후에 장로가 되셨고 지금은 은퇴한지 오래되신 분들이었습니다. 그 분들이 새벽의 앞자리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당시 개척교회 시절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그 때는 임직에 나이 제한이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시 장로 임직을 받았던 이 분들은 30대 중후반이거나 많아도 겨우 40대 초반이었습니다. 몇 분이 제 눈에 들어 왔는데 그 중 작은 몸을 웅크린, 그래서 심지어 초라해 보이는 노인 한 분의 뒷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옛 모습이 기억났습니다.

 

 

30대에 장로가 되고 교회가 계속해서 성전을 건축해야 할 만큼 성장이 빠르다 보니 그 분을 포함하여 30대 중직자들의 수고와 헌신은 말 그대로 정신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분들이 맡은 일 만큼이나 결정해야 할 권한이 크다보니 학생인 제 눈에는 그 분들이 상당히 거대해 보였습니다. 실제로는 아주 작은 분들이었는데 말입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에서 앞장서 헌신을 하던 젊은 리더들은 헌신과 더불어 인간으로서의 완장도 함께 차고 있어 헌신과 독재의 경계선에 있었음을 지금에야 인식하게 됩니다. 자신들의 사업 성장과 교회 성장이 함께 진행되며 저물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젊은 리더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부침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특별히 제가 뒷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이 분은 가장 힘있게 헌신하고 가장 힘있게 완장을 차고 있었는데 이후 여러 어려움을 겪었고 심지어 사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몸을 웅크린채 가장 이른 새벽시간에 기도하는 그 분의 뒷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젊은 시절에 비해 초라해 보이는 모습이지만 저는 그 분이 참으로 '복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슷하게 은퇴하고 승승장구하여 아직도 완장을 차고 있는 듯 한 분들이 여전히 주변에 보이는 상황에서 비록 여러 어려움을 만났지만 그 일로 자신의 실제 크기보다 더 크게 보였던 이 분이 이제 자신의  실제 크기보다 더 작게 보이며 웅크린 그 모습에서 '다만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을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 하고 그래서 마태복음의 그 사람들이 떠 오르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아닌 가난한 과부, 많은 일을 행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아닌 그저 냉수 한 그릇 주었다고 생각한 사람들말입니다. 예수님의 평가는 늘 사람들의 기준과 달랐습니다.  

우리는 결국 무엇으로 주님 앞에 서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룬 것이 아니라 끝없이 자신을 부수어 내는 '회개의 복음'으로 인해 은혜로 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큰 소리 치며 살더니 저게 뭐냐라고 손가락질 할 사람들이 있을지 몰라도 새벽 웅크린 그 노장로님의 뒷 모습을 보며 언젠가 저도 어깨 펴기보다는 웅크린 자리에 있고 싶습니다. 주님 앞에 다만 죄인임을 고백하면서... 샬롬.

 

2022년 10월 1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