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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칼로 찌르는 자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4월이고 사무실 근처 목련이 만개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도 꽃이 가득하길 빕니다.

 

10년 전쯤 아부다비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이 공사 중이었고 밖에 걸린 설계도 설명에 빛을 마치 비가 내리는 것 같이(rain of light) 건축한다는 것을 보고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

 

 

빛의 비

 

그리고 세월이 지나 건축된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을 가 볼 기회는 없었지만 사진으로 보고 참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건축가인  장 누벨(Jean Nouvel)의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얼마전 우연히 한 건축가의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한국인인 이 분은 프랑스 장 누벨의 회사에 입사하여 함께 일하다 이제 귀국하여 건축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입사 때의 일화를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5개의 건축설계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장 누벨과 면담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4개까지는 나름 만족스럽게 작품이 나왔는데 마지막 작품이 잘 떠오르지 않고 시간은 촉박해서 그냥 주변에 있는 것들을 모아 대충 만들고 누군가 먹고 버린 망고 껍데기가 있길래 그걸 엎어 씌우고 보기 흉해서 흰색 칠을 했다고 합니다.

장 누벨이 왔고 제발 4개에만 관심을 갖고 이야기 해 주기를 바랬는데 마지막 것을 지목하며 이야기를 꺼내길래 너무 부끄러워 '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냥 앞에 있는 4개만 봐 주시면 안될까요?" 라고 했더니 "한번만 더 내 말을 자르면 너를 잘라버리겠다"고 하더랍니다. 찬바람 쌩쌩^^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 하더랍니다. "앞의 4개가 네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은 익숙하기 때문이고 마지막 것이 자신없는 이유는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은 이런 낯선 것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더니 칼을 가지고 와서 그 망고 껍데기를 '푹푹' 찌르더랍니다. 그 사이로 빛이 들어간 것이죠. 결국 이 허접하고 자신없던 마지막 작품이 발전하여 '빛의 비'라 불리는 아부다비 루브르 박물관이 탄생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미 묵상이 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때로 우리 스스로 낯설게 여기는 것 혹은 우리가 섬기는 현지 공동체가 스스로 부끄럽게 여길지도 모르는 생각과 실천, 그리고 스스로의 성찰이 비록 낯설어도 사실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가는 길일 수 있음을 말해주는 귀중한 이야기로 저는 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선교사의 역할은 칼을 들고 푹푹 찔러 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현지인의 새로운 생각에 난도질을 하는 역할이 아니라 거기에 구멍 몇개를 내어 너무나 멋진 자성(自省)과 자신학(自神學)의 길로 가도록 하는 안내자의 역할 말입니다. 

다만 그 칼이 혹 잘못 사용되어 주변에 피흘리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넉넉한 인품이라는 칼집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샬롬.

 

2024년 4월 1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