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벌써 유월입니다. 지난 달에는 몰타에서 인사를 드렸는데요. 그 일정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여러 선교사님들 그리고 참석하신 성도님들과 함께 사도바울의 발자취와 몇몇 기독교 유적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9월 한국에서 열리는 로잔 선교대회와 관련하여 사도행전 묵상의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있어 그 여정이 더욱 유익했습니다.
사도바울의 발자취는 몰타(멜리데)를 시작으로 이후 아덴과 고린도, 겐그리아 그리고 데살로니가, 아볼로니아, 네압볼리, 빌립보 등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의 마지막 여정부터 거슬러 올라간 셈이 되었는데 그렇게 하니 사도의 마지막을 본 상황에서 이전에 일어난 일들의 의미를 성찰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등장은 스데반의 죽음과 함께 시작되었는데 스데반의 설교는 한마디로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사람 중에 계신다"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성전과 율법 중심의 바울에게 그 말이 쓸데없는 소리로 들렸겠지만 이 후 주님을 만나고 나서 그도 같은 생각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덴에서 그는 스데반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라고 강조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 십자가의 복음 밖에 몰랐던 바울, 그러나 그 십자가의 복음은 지나치게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어서 마가 요한처럼 나약한 자를 품을 수는 없었나 봅니다. 2차 선교 여정을 시작하면서 그 문제로 바나바와 심히 다투었으니까요. 열정은 가득했지만 그의 2차 여정이 개운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나서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계속 막힙니다. 그러니 바울의 마음에 '이 무슨 일인가?"라고 생각하며 마가 요한의 문제를 성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우리를 도우라'는 마게도니아인의 환상을 보고 건너온 곳이 빌립보 입니다. 바울이 루디아를 만난 빌립보 강가에 서서 잠시 그 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복음의 길이 막히고 낯선 유럽의 첫 도시에서 바울은 '이제 새 길이 열리네!'라는 생각보다는 자신을 성찰하며 주님께 묻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왜 그러시나요?'. 저희 가정이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수도 없이 물었던 그 질문, 그리고 여러분 아마 오늘 계속 던지고 계실 그 질문, "주님, 왜 그러시나요?"가 오버랩되어 떠 올랐습니다. 요즘 말로 "어쩔..."
바울은 그렇게 주님께 묻기 위해 기도처를 구하다가 강가에서 루디아를 만나고 결국 그 집에 머물게 됩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위 '과업' 중심의 십자가와 복음이라면 남녀 차별이 심했던 그 시대에 루디아가 보일리 만무해 보입니다. 그런데 막으시고 인도하신 그 성에서, 다른 말로 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마가 요한을 과업 앞에 무시해 버린 일에 통렬한 반성이 있었을 바울에게, 전에는 보이지 않던 '여인'이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후에는 고린도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동역이 이루어지니 여인을 포함한 동역의 시작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사람'을 보기 시작한 빌립보에서 출발했다고 보여집니다.
빌립보의 그 강가에 서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바울은 '교회 개척'을 한 것이 아니라 '사람 개척'을 한 것이었구나. 바울에게 교회라는 말은 곧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 곧 성도들이었구나." 동시에 오늘날 우리는 교회 개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미묘하게 사람보다 건물이 앞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몇 바울 서신의 첫 문장들을 보니 새롭게 읽혔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하노니"
오늘 우리 눈에 나약해 보이는 주변의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거하시기 위해 지으신 사람'임을 볼 수 있는 시각이 열리기를, 그리고 우리가 섬기는 그 현장에서 '사람을 개척'하는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유월도 강건하시길. 샬롬.
2024년 6월 1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