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영화 노팅힐을 아시나요? 줄리아 로버츠 주연으로 영국 런던의 노팅힐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로코 영화입니다. 미국 여배우 안나(줄리아 로버츠)가 새로 개봉할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영국에 왔다가 노팅힐 지역의 작은 책방 주인인 윌리엄(휴 그렌트)을 우연히 만나 이루어지는 사랑이야기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그 후 영국에 갈 일이 생겨 영화 촬영 장소인 그 책방에 가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로 영국에서 공부할 때 가끔 런던에 가면 그곳을 방문하고, 노팅힐 거리의 길거리 시장과 주말에 펼쳐지는 벼룩시장, 그리고 각 나라 음식 등을 맛보곤 했습니다. 최근에는 영국에 출장가는 일이 잦아져 시간이 되면 그곳을 방문하여 추억을 더듬곤 했습니다. 물론 노팅힐 영화도 몇번을 더 보았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노팅힐을 아주 좋아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휴일에 우연히 티브이에서 노팅힐을 보여 주길래 이미 영화 중간 쯤이었지만 추억을 생각하며 나머지 절반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안나가 영국을 재방문하면서 자신의 뉴욕 집에 걸려있던 그림 하나를 윌리엄에게 잘못에 대한 사과와 사랑의 의미로 선물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다가 안나가 전해주는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보자마자 '어, 저거 샤갈 그림이잖아'라고 옆에 있던 아내와 함께 소리쳤습니다. 그렇게 노팅힐을 여러번 보고 그곳을 그렇게 여러번 방문하면서 좋아한다고 했는데 어찌 이 영화에 샤갈 그림이 나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지? 뒤통수를 한대 맞는 기분이었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사실 샤갈의 이름은 알지만 그의 그림을 자세히 감상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 두달 '품에서'에서 언급한 그 선교대회 여행 때 남프랑스를 가게 되었고 샤갈의 무덤이 있는 쌩폴드방스와 그의 작품이 있는 니스의 샤갈 미술관을 들렀었습니다. 미술관에서 유대인 샤갈이 그린 성경이야기 작품들에 대한 설명도 듣고 예술가들의 마을인 쌩폴드방스에서는 함께 간 분이 샤갈 그림의 한정 복제품을 사게 되어 함께 이것 저것 고르다 보니 샤갈의 그림이 어느 정도 눈에 익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노팅힐 영화를 보다가 거기 나온 그림을 보자 그것이 샤갈의 그림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던 것이죠.
마침 휴일이라 넷플릭스로 들어가 '노팅힐'을 처음부터 자세히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미 윌리엄 집에 그 샤갈의 그림 포스터가 있었고 심지어 '샤갈을 좋아하냐'는 대화도 있었고 나중에 사과할 일이 있던 대스타 안나가 자기 집에 걸려 있던 같은 그림 원본을 영국 재방문 때 가지고 와서 윌리엄에게 준다는 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설정이 이전에 영화를 볼 때는 하나도 안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샤갈의 그림을 알게 된 후에야 그것이 너무나 분명히 보인 것이죠.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심지어 노팅힐의 작가 리차드 커티스가 영화에 나오는 그 샤갈의 그림 '신부'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영화 속에 나오는 그 '신부'라는 그림은 마치 영화 '헤어질 결심'의 엔딩곡인 '안개'라는 노래처럼 영화 전체의 모티프가 되는 핵심적인 암시일 수 있는데, 그만 제가 좋아하는 장면에 몰두하느라 그 부분이 나오는지도 눈치채지 못하고 영화를 여러번 보았다는 사실이 다소 충격이었습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인생을 살면서 그리고 심지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선교사로 살면서 막상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모티프, 목적 등은 보이지 않고 세상에서 내게 보이는 것, 내가 이루려는 것에 천착하다가 진짜 보아야 할 많은 장면들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변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느라 그 사람의 진면목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 여러 생각할 거리를 이 경험을 통해 갖게 됩니다. 안다고 생각하던 것, 익숙한 것에 대해 시간을 내어 다시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 시간인 듯 합니다. 요즘 하는 말로 '뜨문 뜨문' 아는 것은 아닌지... 샬롬.
2024년 7월 1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