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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뒷것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무더위에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7-80년대에 한국의 젊은이로 살았던 사람들의 삶, 어느 자락에는 '김민기'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을텐데 저도 그 중 한 사람입니다.

고등학교 때, 가을이 되면 문학의 밤이 열리는 동네 교회들을 다니며 그 분이 지은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를 여러 차례 불렀고, 대학시절 학교 앞 DJ가 있는 다방에 가서 그 분의 '친구'라는 곡을 신청해 들었습니다. 잘 알려진 '아침 이슬', ' 상록수', '아름다운 사람' 등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김민기 선생이 '아침 이슬'을 만든 대학생 시절에 저희 동네라 할 수 있는 우이동에 살았다고 하고, 조용히 살아야 했던 군사 정권 시절에는 저도 언젠가 살고 싶어 자주 가는 연천에서 농사를 지었다고 하니 한번도 뵌적은 없지만 이만하면 꽤 연이 있는 셈입니다.  물론 이 정도의 연은 그 시대를 살았던 분들은 거의 이모 저모로 가진 것이니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김민기 선생이 지난 7월 21일에 소천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신학교를 뜻하는 '세미나리'의 라틴어 '세미나리오'는 농업에서 '못자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못자리는 볍씨를 뿌려서 벼의 싹인 '모'를 기르는 논입니다. 거기서 길러진 모를 논에 옮겨 심어 우리가 먹는 '쌀'을 얻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못자리는 중요할 수 밖에 없고 그런 의미에서 오래전에 교회는 신학교를 그렇게 이름 붙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연천에서 농사를 지었던 경험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 경험과 무관하게 그가 가진 삶의 가치가 늘 그러했기 때문인지 그는 대학로에 공연장을 시작하면서 이름을 학전(學田)이라고 붙였습니다. '배움의 못자리'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리고 아시는대로 수 많은 배우들이 그리고 가수들이 학전을 통해 싹을 틔우고 좋은 벼로 자라 우리 사회에 좋은 "쌀"이 되었습니다. 연기력 좋은 배우들이 대부분 학전 출신인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 때 연극반에 몸 담았던 저는 연극을 업으로 삼았던 선배나 후배들이 당시 얼마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했는지 조금은 아는데 학전에서는 배우들과 계약을 하고 공연 수익을 공정하게 나누어서 세금을 내고 계약된 대로 사례를 받았다니  그 금액과 상관없이 연극하는 사람들이 가졌을 '뿌듯함'이 공감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우하는 가치가 만들어낸 하나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무대에 서는 배우들을 '앞것'이라고 부르고 자신과 같이 무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뒷것'이라고 불렀다하여 얼마전 방영된 다큐 제목이 '뒷것 김민기'였습니다.

천성이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관객이 있는 무대에서는 한번도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는 사람.

야학하는 후배들이 달동네 어린이 집을 짓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하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공연을 했던 사람.

'돈이 되는 것만 하다보면 돈이 안되는 것을 못할 것 같다'고 하면서 '지하철 1호선' 공연을 중단하고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쓰고 공연했던 사람.

독재 정권 시절 독이 가득한 후배들에게 미워하지 말라고.. 미워하던 사람들이 그 대상을 닮게 되더라고 말했다는 사람, 사람, 사람. 그를 세상은 여러 수식어를 사용해 부르지만 그냥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문득, 촌철살인의 질문으로 대담자를 긴장시켰던 손석희 앵커가 김민기 선생을 인터뷰 하던 날 오히려 긴장하고 떨려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사람됨의 존재감이 컸던 분에 대한 떨림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전이 문을 닫기 전 더 자주 공연을 보러 갔어야 했는데 라는 후회를 학전이 문을 닫고 이제 그 분이 떠나고 나서야 하게 됩니다.

고등학교 때 여러 차례 불렀다고 했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는 사실 김지하씨가 쓴 '금관의 예수'라는 극에 나오는 노래 중 하나입니다. 예수에게 금관을 씌우고 더불어 우리도 금관을 쓰려고 애쓰는 모습이 오늘에도 낯설지 않습니다.

사람의 태어난 기질이 다르니 모두가 그럴 수는 없겠지만 선교사의 역할은 '뒷것'의 역할이고 '못자리'를 준비하는 역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지인이 '앞것'이 되도록, 그리고 그 현지인도 후에 누군가를 위해서 '뒷것'이 되도록 '뒷것 됨'의 모범을 보이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저희는 본부에서 열심히 '못자리'를 만들어 훈련과 연구와 지원이 모두 좋은 '모'를 만드는 자리가 되도록 뒷것의 역할을 감당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선교사님들은 계신 그 곳에서 못자리를 만들고 열심히 뒷것의 역할을 감당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 하실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늘 동행해 주시기를 빕니다. 샬롬.

 

2024년 8월 1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