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아침과 저녁의 기온은 자신의 때가 지났음을 알고 물러갔는데 낮 더위는 9월 지나 10월이 왔는데도 아직 남아 꼬장(?)을 부리고 있네요. 곧 물러가리라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잘 쓰지 않지만 저희 세대는 '아지트'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본래 러시아어 아기뜨뿡뜨(agitpunkt)에서 유래했다는 이 말은 운동권의 은신처 쯤에 해당하는 말이었으나 그 후 누군가의 은밀한 공간, 친구들끼리만 아는 공간 등으로 의미 변화를 거쳐 왔습니다. 학생시절에 친구들과 어떤 장소를 우리만의 아지트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홍콩에서 인도네시아 출신 가정부들을 섬기는 사역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싱가포르, 홍콩 등 국가에는 소위 메이드(maid)라 불리는 동남아 출신의 가정부들이 많이 있는데 가족을 두고 온 그들의 삶이 만만치 않아 고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는 안타까운 사례들도 있습니다. 홍콩교회의 도움을 받아 인도네시아 자매들을 위해 한 공간을 마련하고 쉬는 날에 그곳에 와서 휴식할 수 있도록 하며 그들을 섬기는 사역자였습니다. 그들을 위해 애써서 무슨 봉사를 해 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그들만의 공간을 주면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깔깔 거리며 밤새도록 이야기한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그곳이 그들의 아지트가 된 셈입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그 무슬림 자매들과 복음을 나누게 되고 몇 년후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면 그곳에 가서도 계속 믿음을 지키도록 지원하고 심지어 그들을 통해 인도네시아에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감동이 되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얼마전 동두천에서 태국인을 섬기는 목사님 부부를 방문했다가 그 홍콩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저희는 한국인 모임을 하기 위해 그 곳에 간 것인데 그 때가 주말이라 저녁에 일을 마친 태국 형제 자매들이 짐을 들고 삼삼 오오 들어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지역교회로 부터 빌려 쓰고 있는 개울 옆 수양관 시설인데 태국 형제 자매들이 주일 예배를 위해 주일에 오는 것이 아니라 일을 마친 토요일, 심지어 금요일 저녁에 바로 이 곳으로 온다고 했습니다.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만이 아니라 멀리서도 몇 시간 기차와 차를 갈아타고 온다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이 곳이 그들의 아지트인 셈입니다. 힘든 객지 생활이지만 이곳에 와서 동족을 만나고 음식을 해 먹고 차를 마시고 깔깔 거리는 공간입니다. 그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는 일도 그들을 즐거움으로 섬기는 목사님 부부를 보는 것도 행복했습니다.
이태원에서 무슬림들을 오랫 동안 섬기고 있는 친구 선교사도 기증받은 시골 땅에 그런 공간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오랫동안 이태원에서 센터 사역을 했는데 경험을 통해 얻게 된 생각은 이제 좁은 센터가 아니라 넓은 공간에 그들이 아무때나 와서 쉬고 농사도 짓고 할 수 있는 공간, 즉 그들의 아지트를 만든다고 합니다.
단순히 공간만이 아지트는 아니겠지요. 아무리 공간이 좋아도 불편한 사람들이 있으면 오지 않을테니까요. 거기에 그들을 잘 섬기는 그 목사님 부부, 친구 선교사, 홍콩의 그 사역자가 있기에 그 곳이 낯선 땅에서 힘든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아지트가 되었고 결국 예수님이 그들의 아지트가 된 것이라 믿습니다.
여러분이 사역하는 그곳이 누군가에게 아지트가 되기를, 그리고 여러분이 바로 그 아지트가 되기를, 마침내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한 아지트임을 발견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샬롬.
2024년 10월 1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