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잘 지내시는지요? 한국은 대선으로 분주합니다. 현장에 계신 여러 선생님들의 마음만이라도 분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난 달의 '품에서'를 기억하는 분들은 그 때 책 이야기를 좀 정리해 보겠다는 약속을 기억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좀 글이 길어질 것이니 단단히 각오하세요^^^
1949년부터 69년까지 20년간 미국 뉴욕에 사는 무명 방송작가 '헬레인 한프'와 영국 고서점의 직원인 '프랭크 도엘'이 주고 받은 편지를 엮은 책이 '채링크로스 84번지'입니다. 영국 런던에 있는 채링크로스는 당시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청계천 헌책방 거리같은 그런 곳이었다고 합니다. 미국 사는 헬레인은 영국에서 출간된 옛 책들을 주문하는 입장이고 영국 사는 프랭크는 헬레인이 찾는 책을 찾아 보내주는 입장인데 주문서와 청구서를 겸한 편지의 내용이 아주 흥미로와 지난 달에 제가 읽기에 '아까운 책'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헬레인은 좀 까칠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합니다. 미국의 자유분방함을 대표하는 듯 합니다. 프랭크는 은유적이고 돌려서 이야기 합니다. 영국 신사의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 보죠. 헬레인이 책 값을 현금으로 편지에 직접 넣어 보내자 프랭크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친애하는 한프양,
귀양께서 보내신 6달러는 안전하게 받았지만, 앞으로는 우편환으로 송금해 주신다면 훨씬 마음이 놓일 듯합니다. 우편물에 달러 지폐를 넣은 것보다 좀더 안전하게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자 헬레인이 다음 편지에 이렇게 답합니다.
청구액 3달러 88센트의 지불금으로 4달러를 동봉합니다. 나머지 12센트로는 커피나 한 잔 드세요. 이 근처에 우체국이 없어서 록펠러 플라자까지 가야하는데, 거기로 나가 줄을 섰다가 3달러 88센트짜리 우편환을 부칠 생각은 없군요. 또, 제가 거기에 갈 다른 볼 일이 생길 때까지 기다린다 해도 이 3달러 88센트가 그 때까지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요. 저는 미합중국의 항공 우편과 대영제국의 우정국에 맹목적인 신뢰를 품어 보렵니다.
헬레인과 프랭크의 성격이 보이죠? 남은 12센트로 커피나 한 잔 드시라는 말에 대한 프랭크의 팽팽한 답도 재미있습니다.
친애하는 한프양,
보내신 4달러는 무사히 도착했고, 나머지 12센트는 귀양의 신용장에 달아두었습니다.
전쟁 이후 영국은 경제가 어려워 배급제를 시행했고 사람들은 필요한 것을 제대로 구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무명작가인 헬레인의 수입도 크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헬레인은 서점에서 일하는 프랭크와 다른 직원들을 위해 식료품을 보냅니다. 당시 돈을 보내면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영국으로 식료품을 보내주는 배달 서비스가 있었나 봅니다. 헬레인의 편지입니다.
아 참, 브라이언 (헬레인 위층사는 여자의 영국인 남자 친구) 말이 영국에서는 한 가족당 일주일에 육류 60그램과 한 사람당 한 달에 달걀 한 알씩 배급하고 있다고 해서, 한마디로 경악했습니다. 이 친구는 어느 영국 회사에서 나온 상품 목록을 갖고 있는데, 그걸 덴마크에서 영국에 계신 어머니께 음식을 공수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자그마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크스 서점 앞으로 보냅니다. 나눠 드실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브라이언 말이 채링크로스 가의 서점들은 '전부가 꽤 작은 편'이라고 하던데요. 소포는 'FPD' (프랭크 도엘을 말함) 앞으로 보냅니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요한복음을 공부할 때 요한복음에는 구약의 직접 인용이 별로 없는 데 그에 대해 이렇게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요한이 구약을 인용하려 했다면 구약을 통째로 가져와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몇 구절이 아니라 전체를 녹여서 요한복음에 넣었다는 말입니다. 저도 지금 비슷한 감정을 느낍니다. 몇 개의 인용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전달이 안되네요. 이 글에 체링크로스 84번지라는 책을 통째로 넣고 싶은 마음입니다. 여러분께서 읽어보시리라 생각하며 줄입니다.
그렇게 책을 주문하고 책을 구해 주면서 이들의 편지는 20년간 지속됩니다. 헬레인은 영국에서 구할 책이 많았고 프랭크는 구하기 어려운 책을 어렵게 구해서라도 보내주었습니다. 헬레인은 또 기회가 되는대로 식료품을 보내고 반대로 마크스 서점의 직원들도 헬레인에게 가끔 선물을 보내곤 합니다.
헬레인과 프랭크의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지만 그 스타일을 벗겨내면 그들의 마음에는 따뜻함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그런 말을 드러내놓고 하지는 않았지만 그 따뜻함이 서로의 가슴에 깊은 신뢰와 우정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친구 목사님이 좋아하는 표현으로 '사람 냄새'가 물씬 납니다.
프랭크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마크스 서점의 직원들은 헬레인이 영국을 꼭 방문해 주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비록 영국을 가본 적은 없지만 여러 작가들과 책들을 통해 영국을 눈으로 보듯 훤하게 알고 있던 헬레인도 꼭 영국을 방문하고 싶어 했습니다. 1953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에 맞춰 방문할 계획을 세웠고 마크스 서점의 직원들과 가족들의 기대는 컸습니다. 하지만 겨우 모아 둔 여행 경비를 치과 치료를 위해 지불해야만 해서 결국 취소됩니다.
1956년 여름에 다시 영국에 갈 계획을 세웁니다. 다시 마크스 서점의 사람들은 헬레인을 만날 기대에 부풉니다. 하지만 헬레인이 살던 집이 철거 명령을 받아 집을 옮겨야 했고 결국 모아 둔 여행 경비를 집을 구하는데 사용하게 되어 다시 연기가 됩니다. 헬레인은 자신의 친구들이 영국을 여행할 때 그 서점을 꼭 들러 주기를 바랬고 마크스 서점의 직원들은 그 친구들을 마치 헬레인을 만난 것 처럼 반갑게 맞이 합니다.
그리고 1968년 12월에 프랭크 도엘이 사망했고 20년간의 편지는 끝이 납니다. 끝내 그 두 사람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책의 마지막 편지는 헬레인이 전에 위층 살던 캐서린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캐서린은 곧 영국인 남자 친구 브라이언과 함께 영국을 여행하려고 합니다.
브라이언이 전화로 '여비만 있다면 우리랑 같이 가시겠어요?' 그러는데, 하마터면 울음이 터질 뻔했어요. (중략) 너무나 긴 세월 꿈꿔 온 여행이죠. 단지 그곳 거리를 보고 싶어서 영국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고요. (중략) 이 모든 책을 내게 팔았던 그 축복 받은 사람이 몇 달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서점 주인 마크스 씨도요. 하지만 마크스 서점은 아직 거기 있답니다. 혹 채링크로스 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내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겠어요? 제가 정말 큰 신세를 졌습니다. ( If you happen to pass by 84 Charing Cross Road, kiss it for me! I owe it so much. 이 부분을 읽을 때 저는 갱년기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1970년에 편지들을 묶은 이 책이 나오고 그 판권을 영국 출판사가 사면서 1971년 출간에 맞춰 헬레인의 영국 여행이 실현됩니다. 그리고 프랭크의 가족, 서점 주인 마크스의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책을 읽고 감동받은 여러 사람들과 영국에서 약 40일간 꿈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그 여행 기록을 쓴 책이 '마침내 런던'입니다. 그 곳에서 마치 공작 부인 대접을 받았다고 해서 자신이 머물던 호텔이 있는 거리의 이름을 따서 책의 원제목은 '블룸스버리 가의 공작 부인'입니다. 그 책 이야기까지 쓰면 여러분이 밤을 새우셔야 할 것 같아 남겨 둡니다.
다만 한가지, 프랭크는 세상을 떠나고 서점은 이미 폐점이 된 상태에서 헬레인이 그 빈 서점에 마침내 들어가는 장면이 감동적입니다. 아무도 없는 그곳의 난간을 잡고 헬레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때요, 프랭키? 내가 드디어 왔답니다.'(How about this, Frankie? I finally made it.) 이 장면에서 저는 또 한번 갱년기를 느꼈습니다.
제가 감동한 것은 그들의 우정이었습니다. 한국판의 저자 소개에는 그들이 우정을 나눌 수 있었던 이유를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도 물론이겠지만 그 보다는 성향과 스타일이 달라도 그 근저에 있는 인간의 따뜻함을 공유한 것이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실 때 자신의 형상을 따라 넣으셨을 그 따뜻함, 그것을 유지하는 한 우리는 모두 깊은 우정을 가질 수 있다는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성향에 집중하고 MBTI의 본래 목적과 무관하게 차이에 집중하며 지역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진영이 다르면 서로를 악마화하기 위해 애쓰는 요즘 세상을 살고 있기에, 그와 현저하게 대비되는 헬레인과 프랭크의 이야기, 한번도 만나지 않았음에도 오랬동안 누렸던 이들의 우정에 눈물이 났습니다. 만나지 않아도 이렇게 따뜻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데 오늘날은 오히려 너무 접촉이 많아 이런 따뜻함을 잃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네비 사용으로 점점 방향 감각을 잃는 것처럼 말입니다.
만난 적이 없이 가진 이들의 우정이 제게 바울의 서신이라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해 줍니다. 자주 만나기 어려웠던 바울과 여러 지역의 공동체는 바로 이 따뜻한 '우정 공동체'였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바울서신의 근저에는 서로를 신뢰하는 우정이 있었고 그 우정 공동체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들과 만들어 가신 공동체를 닮아 있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15:13-15)
서로의 뜻을 이해하는 우정 그리고 그 뜻은 하나님의 뜻을 지향하는 그런 우정 공동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 현지의 선생님들, 함께 살아가며 섬기시는 그 공동체와 이런 깊은 우정 공동체를 만들어 가실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우정 공동체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뜻을 지속해서 성찰하는 마음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샬롬.
2025년 6월 1일
권성찬 드림
추신: 마침 영국에 출장 온 저는 어제 시간을 내어 지금은 없어지고 대신 기념 동판이 남아 있는 그 마크스 서점 자리에 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때요 헬레인, 마침내 나도 와서 여기에 '입맞춤'해요'. 그리고 영국 방문 때 헬레인이 머물던 호텔, 공원 등등 종일 헬레인과 프랭크의 우정을 기리며 걸었습니다. 다음 달까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