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저희가 국내로 들어 온 2019년에는 집에 에어콘이 없었습니다. 2020년에 에어콘을 설치하고도 사용 기간은 아주 더운 기간 일주일 정도였습니다. 이제 7월 들어서는데 어제 밤에만도 몇번이나 에어콘을 켰습니다. 기후에 많은 변화가 왔음을 실감합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얼마전 영국 출장 중에 있었던 일입니다. 선교 훈련을 섬기는 강사들이 며칠 먼저 모여 준비하며 교제의 시간을 가졌는데 이번에는 4명의 강사가 미리모여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장소에 각종 악기를 들고 온 음악가 그룹이 있었습니다. 작은 공간이라 함께 아침을 먹으며 서로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음악으로 예배하고 사역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코로나 때 결성된 사역 팀이라고 했습니다. 하는 사역은 마치 초상화 그림을 그리듯이 음악으로 초상화를 그리는 사역이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Sound Portrait (소리 초상화)이라 부른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을 향해 그의 초상화를 그리듯 악기를 연주하며 위로하고 치유하고 격려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희 4명을 위해서도 한 사람씩 그렇게 음악으로 초상화를 그려 주겠다고 하여 아침 식사 후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음악을 연주해 주었습니다. 저라는 캔버스에 음악으로 그림을 그린 셈입니다. 모두에게 똑같은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앉아 있는 한 사람을 생각하며 연주자들이 한번도 연주해 본 적이 없는 음악을 즉흥적으로 서로 맞추어 가며 그림을 그리듯 연주하였습니다.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저를 향해 연주할 때 저도 눈을 감고 제 머리 속에 떠 오르는 장면들을 그려 보았고 10분 정도의 연주를 마친 후에는 저의 생각도 나누고 각 연주자들이 연주하며 저에 대해 떠오른 생각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격려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 동료인 영국 친구의 차례가 되었는데 그는 자신을 향해 그 소리 초상화가 그려지는 동안 울기 시작했습니다. 늘 유쾌하고 오랫동안 알면서 한 번도 그 영국친구가 우는 것을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눈물을 흘리는 정도가 아니라 오열을 하더니 연주를 마친 후에도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울었습니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물론 다를 수 있는데 그 상황을 보면서 한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나는 그 음악을 들으며 머리속에 어떤 장면을 생각했고 그 친구는 어떤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 음악으로 입혀졌 (be painted)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저는 그 연주를 대상으로 감상하였고 그 친구는 그 음악으로 칠해지고 있던 것이죠.
그 날 오후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며 예수님의 성육신에 대해 기존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래전 선교에 대해 배울 때 우리의 선교가 성육신적 선교가 되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 성육신적 선교란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성육신적으로 선교를 해야한다는 뜻이고 다른 말로 예수님의 성육신이 우리의 선교 모델이라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에 있을 때도 할 수 있는 한 그들과 같이 되려고 했습니다. 수염, 의복과 같은 것은 아주 기본적인 것이었고 가급적 먹는 것도 현지화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지인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그들과 많은 부분에서 차이나는 외국인이요 이방인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오늘도 이런 노력을 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번 경험을 통해 성육신은 선교의 '모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제가 음악을 들으며 그것으로 입혀지기 보다 어떤 것을 떠올리는 것에 그치듯, 성육신이 하나의 모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영국 친구가 음악으로 옷입었듯, 그리고 성령이 임재하여 그가 통곡하듯 성육신은 실제로 우리 가운데 그리고 우리의 선교 사역 가운데 주님께서 성령으로 임재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따라서 해야 하는 모델 정도가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성육신적 모델을 따라 사역하는 것도 물론 귀하지만 더 나아가 주님이 임재하시는 삶과 사역, 그래서 요한이 말했듯이 우리는 물론이고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이 그의 임재를 경험하는 일들이 우리의 현장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요일1:1)
여러분의 성육신적 삶과 사역을 통해 그곳에 주님께서 임재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달에 긴 글을 읽어 주셔서 이번 달에는 이만 줄입니다. 샬롬.
2025. 7. 1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