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이제 한국은 진짜 가을이 왔고 곧 겨울로 바로 넘어갈 것 같은 두려움도 있습니다. 계신 곳에서 건강하시길 빕니다.
선교사가 되기 전 직장 생활할 때 사무실이 숭례문을 돌아 남산으로 올라가는 언덕 위, 옛 도큐 호텔이라 불리던 단암 빌딩 높은 층에 있었고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힐튼 호텔이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붉게 또 다른 때는 검게 보이던 그 장엄한 건물은 5성급 호텔이라 비록 가까이 있지만 들어 갈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나름 한국의 현대 건축을 대표하던 그 힐튼이 철거되고 있습니다. 철거를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이 힐튼 근처에서 전시를 한다고 해서 몇몇 지인들과 함께 <힐튼서울 자서전>라는 이름의 그 전시를 가 보았습니다. 한 시대를 누리고 저무는 그 건물이 한 사람의 인생 같기도 하고, 혹은 한 선교 기관의 모습 같기도 해서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 중 몇 가지만 나누어 볼까 합니다.

하나, 전시는 다양하게 이루어졌는데 그 중에는 대리석 벽이나 바닥을 떼어 낸 후 드러난 건축물의 속살을 찍은 사진 전시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건물이 그렇지만 외장을 뜯어 내면 흉측한 속이 보입니다. 요즘은 속을 드러내는 인테리어가 유행하지만 실제로는 속을 드러낸 것 같이 보이는 공법을 사용하거나 혹 실제 겉을 뜯어낸 그대로 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 잘 정리된 모습이지 뜯어 낸 그대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너무 흉측하니까요.
우리의 겉 모습을 뜯어 내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하게 만드는 사진들이었습니다. 내면과 외면이 같은 소위 진성 인간이 아쉬운 오늘날, 이 둘을 어떻게 일치에 가깝게 할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4:16) 과연 그런지?

둘, 힐튼은 건축가 김종성씨가 설계했는데 이런 글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건축이 한국적인가에 대한 주변 질문에 대한 생각을 적은 글로 보입니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당분간 전통의 표현 문제를 우리 건축인들의 과제 순위에서 하위에 놓고, 전반적인 건축의 질의 개선에 전념하는 것이, 고건축의 모티프를 이식하려는 행위나, 하루바삐 '한국적' 건축을 조성하려는 조바심보다 우리를 목적지에 빨리 이끄는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말 생각할 것이 많은 말입니다. 저희 한국해외선교회 (GMF)는 그 시작에 국제선교단체의 영향이 있습니다. 그 덕분에 선교에 아직 경험이 없었던 초기에 선교 단체에 필요한 여러 이슈들에 대해 시행착오를 많이 줄였습니다. 선교사 자녀, 선교사 관리, 돌봄 등의 주제들이 그런 부분입니다. 말하자면 선교 초기에 한국적 선교를 무조건 주장하기 보다 앞서 간 국제선교에서 배우고 질을 높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제게 적용되었고 우리 기관이 바로 그런 사례에 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 문물이 들어오는 시기에 먼저 외국에서 현대 건축을 공부한 분의 깊은 성찰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동시에 힐튼이 철거되는 시점에서 그 말을 좀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과연 바람대로 질을 높이는 역할 그래서 그 질과 조금은 미루어 둔 '고건축의 모티프' 혹은 '한국적'이 결합하여 더 훌륭하고 한국적이며 세계적인 건축의 발전이 이루어 졌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건축은 제 분야가 아니라 평가할 수는 없겠습니다.
다만 서구 선교의 경험으로 다른 기관보다 안정을 빨리 이룬 저희 기관이 바람대로 서양의 경험과 그것을 바탕으로 진행되어 온 한국적 경험이 결합되어 더 나은 선교를 한국교회와 세계 선교에 공헌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서양의 경험이 일종의 모범 답안이 되어 우리의 성찰을 방해했고 여전히 여기 저기서 그 동일한 서구적 패러다임을 이러저러하게 모양만 바꾸어 무한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날 새로운 세대가 깊이 물어야 할 질문이라고 보았습니다.
힐튼이 헐리고 그 자리에 기술적으로 탄탄하고 한국적인 건물이 들어선다면 매우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알려지기는 대규모 복합시설이 들어선다고 하는데 이미 상업적인 것에 쩔어 있는 우리가 그 건물이 혹 전혀 한국적이지 않아도 눈치를 채지는 못할 것 같긴 합니다. 성찰은 멈추고 기술만 발전한 그런 거대한 괴물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동시에 우리 선교 안에 답처럼 굳어진 서양 것을 허물고 연속과 비연속을 버무린, 성경에 기반한 바른 선교를 다시 세워야 하는 고민을 가져 봅니다.
마지막, 누구의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전시하는 여러 글귀 중에 이런 말이 눈에 띄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유산은 단순히 보전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과 비평적 성찰의 장이다."
저희 기관은 올 해와 내년에도 여러 기관의 새로운 리더십들이 임기를 시작했거나 시작하게 됩니다. 새로운 세대의 역할은 단순히 옛날 것을 보존하는 역할이 아니라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우리 창립자들이 이런 비전을 세웠어", "원로 목사님은 그렇게 안했어" 등등의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시대적 상황이 변한 부분도 있으니 앞선 세대가 보여준 희생과 헌신을 형식 그대로 재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인생을 교회와 기관에 바친 모든 선배들의 희생에는 고개를 숙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그대로 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그 유산을 비난할 필요는 없지만 비평적 성찰을 통해 오늘날 새로운 창작을 게을리 해서도 안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것은 직무유기일 테니까요.
무너지는 힐튼에서 몇몇 생각을 건져 올렸습니다. 우리가 무너질 때 우리의 후배들은 무너지는 우리를 통해 몇몇 생각이라도 건질 수 있을지 참 무서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부디 여러분이 무너져 내리는 날 누군가는, 특히 섬기는 현지인들이 몇몇 생각을 깊이 건져 올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2025년 11월 1일
다낭에서
권성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