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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불란서 금고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세월이 빠르네요. 벌써 유월입니다. 오늘은 멀리서 문화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선생님들을 위해 연극 한 편을 스포일러 해보려 합니다. 이 연극은 6월 초에 끝날 예정이라 재공연이 있어야 다시 볼 수 있으니 스포일러가 그리 무리는 아니다 싶네요.

 

모처럼 호화 캐스팅인 연극을 보았습니다. 배역마다 더블 캐스팅인데 제가 본 날은 신구, 장현성, 정영주, 조달환 등 얼굴 보면 알 만한 배우들이 나온 날이었습니다. 제목은 '불란서 금고', 그리고 부제는 '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였습니다. 쉽게 말해 금고 터는 이야기를 통해, '북벽으로 상징되는 어떤 목표에 이르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인가?'라는 인문학적 주제를 담은 작품입니다.

 

 

연극은 은행 지하의 금고를 털기 위해 모인 5명의 사람이 지하 금고 앞에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들은 밤 12시가 되면 정전이 되고, 그 틈에 금고를 털려고 모였습니다. 이들은 각자 누군가에게 금고 안의 물건에 대해 전해 듣고 온 사람들입니다. 말하자면 금고 안에는 자신이 갖고자 하는 욕망이 들어 있는 셈입니다.

 

시각을 잃고 청각을 얻은 노인(신구 분)은 금고 문을 여는 전문가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각각 금고 안에 있는 돈, 15세기 그림(해궁신유도), 자신의 뺑소니 사고 증거 영상 등을 얻기 위해 왔습니다. 또 한 사람은 은행 직원으로 헤어진 애인(금고 담당)에게 복수하고자 함께했습니다.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모인 이들이 정전을 기다리며 서로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나누는 대화는 관객에게 큰 웃음을 선사합니다. 이들 중 금고 안에 있는 어떤 것에 목적을 두지 않은 사람은 노인뿐입니다. 그는 금고를 여는 것 자체를 위해 온 사람입니다. 불란서 금고는 실용을 중시하는 미제나 독일제와 달리 예술적이라는 설정입니다. 노인은 "불란서 놈들은 금고에다 예술을 넣었어."라고 말합니다. 그는 금고 다이얼을 돌리며 맞춰지는 그 '딸깍' 소리가 마치 아름다운 노랫소리 같다고 하며 그것 자체를 즐깁니다.

 

마침내 금고 문이 열리고, 각자는 자신들이 찾고자 하는 '욕망'을 찾기 위해 금고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금고 안에는 그 금고를 여는 번호가 적힌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을 뿐이고, 게다가 이상한 낌새를 맡아 내려온 경비원에게 들켜 그들은 오히려 자신의 물건을 하나씩 그 금고 안에 넣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얻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하는 연극입니다. 결국 예술적인 그 금고 자체를 즐긴 노인만이 진정 북벽에 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불경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선교를 그 금고에 비유한다면, 아니 하나님을 그 금고에 비유한다면 그 속으로 들어가 무엇을 얻어내기 위한 '참여'요 '믿음'은 결코 북벽에 오르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합니다. '선교'를 통해 '하나님'을, 그 미세한 소리를 기뻐하고 즐기는 자. 즉, 성삼위 하나님의 교제에 참여하며 한낱 피조물임에도 제4위(位)처럼 대우해 주시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성숙하게 이루어 내는 이가 바로 북벽에 오르는 자라는 것을 묵상하게 합니다.

 

마지막 즈음에 은행원 역을 맡은 여배우가 말합니다. "우리는 누구의 소리를 듣고 온 거죠? 그러고 보니 '제 목소리' 같아요!"

스스로의 목소리를 설마 하나님의 소리로, 하나님의 소명(vocation의 어원은 voice입니다.)으로 믿고 온 것은 아닌지 한 번쯤은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아니 하나님 그분을 즐거워할 때라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극장을 나왔습니다. 샬롬.

 

2026년 6월 1일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