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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우자생존(優者生存)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호주같이 아래쪽은 겨울이지만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사역하시는 곳에서는 별 차이 없이 무더운 8월을 맞으실거라 생각됩니다. 더위만이 아니라 질병도 함께 찾아오는 기후인 만큼 강건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뛰어남을 표시하는 우(優)는 우수하다, 우량하다 등에 쓰이는 한자입니다. 그런데 그 조합이 신기합니다. 사람 인(人)에 근심을 나타내는 근심 우(憂)가 결합된 상태입니다. 해서 홀로 근심하고 있는 사람 곁에 다른 사람이 오는 것이 정다운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사람이 근심을 통해 성장한다는 해석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오늘 저는 비슷하나 조금 다르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근심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또 하나는 '사람을 염려함'이라는 의미입니다.

 

'근심하는 사람'은 아프간에 살때 배운 말입니다. '핫싼에 감카시'는 '근심하고 다니는 핫싼'이라는 뜻입니다. 핫싼은 철수와 같이 흔한 이름이고요. 약방에 감초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자신과 상관없지만 여기저기 다니며 염려해주고 관심갖는 사람,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여기저기 돌보는 사람을 말합니다. 개인의 동굴 속에 들어 앉은 청년이 54만명이라는 최근의 충격적인 보도, 그리고 세상에서는 각 진영의 담이 높아지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이 여기저기를 돌보는 '핫싼의 감카시'가 많아지면 우량한 사회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람에 대한 염려'는 근심의 방향이 사람을 향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목적으로 했던 사업, 교회, 선교, 정치 등 모든 것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대신 사업 자체에 대한 염려, 교회와 선교, 정치 등 그 자체에 대한 염려 등으로 환원되어 목적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애란 작가의 어느 단편소설에 보면 자살을 생각했던 사람이 도배를 하러 온 어느 외국인 노동자가 약간은 서툰 말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묻는 그 말에서 위안을 얻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외국인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 표현으로 한 그 말들이 더 가슴에 남는 건 부족한 형식이 오히려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진심'을 더 빛나게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말이 오역되어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뜻을 가지게 된 것에 반대하며 그와 대비되는 의미로 Survival of the Friendliest(한국책 제목: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고 제목을 붙인 책에서 브라이언과 버네사는 우리 인간이 이렇게 상호관계라는 자기 가축화를 통해 더 큰 무리를 이루어 왔음을 역설하며 오늘날 다른 이들을 비인간화하는 풍조에 경종을 울립니다. 다정함, 친근함이라고 번역할 만한 Friendliest에 대해서 책의 감수를 맡은 박한선은 '우자생존'을 책 제목으로 제안합니다. 그가 소개하는 사전적 의미의 우(優)는 '넉넉하며 도탑고 인정 많고 부드럽고 품위 있고 뛰어남'입니다.

 

오라는데 많지 않아도 선교지 여기저기를 다니며 좋은 의미의 근심을 이끌어 내는 사람, 그리고 비록 현지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진심을 담아 사람의 안부를 묻는 그런 마음, 그것이 오늘 하나님의 선교에 초대받은 우리들의 삶과 사역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샬롬.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시37:11)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

 

2026. 08. 01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