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함께 뜨거운 화제가 되었고 어느새 가을 오듯 빠르게 영화관에서 내려진 나홍진 감독의 '호프'라는 영화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말 그대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 영화입니다. 영화 평론가가 아닌만큼 영화를 통해 성찰하는 정도로 생각을 나눠보려 합니다.
영화 내용은 비무장지대 어느 바닷가 마을에 외계인이 나타나면서 일어나는 소동입니다.
1) 장르
이 영화는 어느 장르에 속하는가? 칸 영화제 출품시 장르를 정해야 해서 감독은 나와 있는 선택지 중 SF를 택했다고 합니다. 보신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SF영화라고 하긴 좀 어렵습니다. 대개 낯선 것을 불편해 하는 우리는 뭐든지 기존의 범주로 규정하려합니다. 규정할 수 없는 것은 거부하게 되고요. 언젠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무명가수가 기존의 노래를 자신의 스타일로 불렀는데 심사위원들이 너무 충격을 받아 그 무명가수에게 '이건 무슨 장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참가번호를 대면서 '장르가 30호'라고 답했습니다. 마찬가지로 '호프'라는 영화의 장르를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장르는 '나홍진'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얼마전 선교지를 방문하면서 느낀 것도 전통적인 선교의 입장에서 '저게 선교야?'라고 곁을 내주지 않으려는 그 새로운 사역, 더 정확히는 그 새로운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율법처럼 기존의 범주 자체를 고수하거나 기존의 선교 유형으로 재단하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고 그리하여 성삼위 하나님의 공동체와 하나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로 우리의 사역을 성찰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2) 해술
그 바닷가 마을에는 해술이라는 어른이 있습니다. 그리고 '해술 아저씨가 그랬다면 맞아'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말하자면 '해술 아저씨'는 공동체에서 '항상 옳은 것'이라는 지위를 갖게 되어 심지어 각 자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무 상관없는 해술 아저씨를 끌어 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해술 아저씨'의 이름이 등장하면 비상식적인 것도 상식이 됩니다. 바울의 말을 듣고 '이것이 그러한가' 상고하는 베뢰아 사람들의 주체적인 성찰이 오늘날 사회와 정치 그리고 선교에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고 자리를 떠난 분들을 존경하고 감사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선교학자, 선교운동가 등 앞선 분들의 주장에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않고 '그 분때는 이랬어', '그 분은 이렇게 말씀했어' 라는 류의 생각은 심지어 정확한 인용도 아닐 경우가 많을 뿐더러 혹 맞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주체적 성찰을 차단한다는 의미에서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가' 상고하는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3) 외계인 해부
영화에서 가장 끔찍하면서도 코믹한 장면 중의 하나가 죽은 외계인의 정체를 알기 위해 보건소장이 해부하는 장면입니다. 황석정 배우의 연기가 한몫했습니다. 마치 물건을 대하듯, 작은 톱으로 해부하고, 안되니 큰 톱으로, 마침내 전기 톱으로 자르는 장면은 '낯선 것의 정체를 알아내는 목표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잔인함을 직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외계인을 우리가 매일 맞이하는 선교지의 낯선 문화라고 가정한다면 그 문화와 그 문화를 입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의 선교를 위해 하나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오래전 식민적 선교를 했던 과오에 대한 반성없이 새로운 형태의 식민적 선교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보게 됩니다. 내가 가져간 구호품이, 내가 모금해서 짓고 있는 교회 건물이, 내가 오늘 현지 사역자를 기관에서 내 보내는 일이 선교지를 살아가는 현지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는 지에 대한 공감없이 우리가 이루어야 하는 '선교'를 위해 무자비한 형태로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4) 음문석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새로운 배우를 알게되는 기쁨이 있습니다. 대개 무명의 시간을 오래 거친 사람들입니다. 범죄도시의 진선규, 김부장의 윤경호 등이 오래 무명의 시간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호프에서는 음문석이라는 배우가 목수 양배 역할을 맡아 기억에 남는 연기를 펼칩니다. 최근 그가 살아 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내와 함께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영화로 돌아가서, 사실 이 외톨이 같이 살아가는 양배가 숲에 사냥을 갔다가 총 한방으로 무언가를 죽여서 집 냉동고 넣었는데 그 생명체가 바로 외계인 왕자입니다. 마을을 휘저으며 격렬하게 공격했던 외계인은 사실 이 잃어버린 왕자를 찾기 위해서 였고 마을을 혹은 지구를 멸망시킬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외계인은 무조건 침략자로 설정하는 서구의 SF가 아니라 심지어 외계인과도 전투전에 소통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 영화는 비록 본격적인 SF영화는 아니지만 SF영화의 한국적 혹은 비서구적 대안의 가능성을 살짝 보여준 것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더불어 서구가 이미 오랫동안 해 온 선교에 20세기 말부터 참여를 시작한 한국교회의 선교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비록 작게라도 대안을 제시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5) 희망
영화는 이미 진행해 온 이야기와 비교할 수 없는 우주의 어떤 큰 이야기의 가능성을 암시만 하고 끝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객이 '뭐야 씨'하며 벌떡 일어나 나갑니다. 저는 이 영화를 3번 보았는데 같은 영화를 영화관에서 3번 보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3번 모두 관객들이 마치자 마자 벌떡 일어나 나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수고한 사람들을 위해 엔딩 크레딧까지 보기로 작정한 바 있는 저는 뜻밖의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주요 관계자들의 이름이 1차로 나오고 2차로 수고한 많은 사람들이 나오기 직전에 쿠키 영상이 있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주인공이 살아나는 장면입니다. 엔도 슈샤쿠의 '침묵'이라는 책 끝에 부록이 있는데, 처음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그 부록은 번역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록의 형식을 빌어 소설의 결론을 내는 것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그 부록을 읽지 않으면 침묵의 결론을 모른채, 더 나아가 그 소설이 말하는 것을 왜곡한 채 책을 덮는 셈입니다. 모든 면에 인내가 필요합니다.
양배에 의해 죽은 외계인 왕자가 다시 부활할 가능성을 영화는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가 부활하면 우주에 상상이 안되는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것도 영화는 암시합니다. 그래서 2편, 3편의 진짜 SF 서사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영화 막바지에 그 왕자의 어머니인, 왕비 '조르'가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히브리서를 인용해 말을 합니다. 영화 제목 '호프'가 지구를 포함한 외계인의 '호프', 우주의 '호프'였나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우리가 우리의 선교 현장과 사역에 발을 딛되 거기 매몰되지 않고 영원에 잇대어 있기를 소망합니다.

6) 연속과 불연속
500만을 향해 가던 호프가 호불호의 벽 앞에서 멈칫할 때 '스파이더 맨'과 '오디세이'라는 외세의 원투 펀치를 맞고 다운 당했습니다. 아쉬운 대목입니다. 그렇지만 오디세이를 만든 '놀란' 감독이나 주인공 '맷 데이먼'의 헌신을 알게 되면 수긍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깊이 성찰했던 서구 선교학자들의 그리고 서구 선교사들의 헌신을 놓치지 않고 잘 경청하고 배우는 연속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시에 불연속성에 대해서도 '호프'를 통해 생각해 봅니다.
이 영화에 대해 평점을 낮게 준 평론가는 아무리 찾아도 영화를 열 수 있는 '열쇠'가 부재하다는 이유를 근거로 제시합니다. 중간 정도의 평점을 준 평론가는 열쇠는 없지만 관객이 각자 '옷핀'을 구부려 열려는 시도를 하게 한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높은 평점을 준 평론가는 이 영화가 주는 다양한 층위의 해석, 즉 실존적, 사회적, 정치적, 신화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현대선교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현지인 스스로 생각할 공간을 주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식민적 선교부터 타문화를 고려한 선교까지, 모습은 다를 뿐 외부의 선교사가 모든 것을 '답'처럼 제시하려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지인이 우리가 생각하는 올바른 답을 말하고 있는가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다소 불완전해 보여도 스스로 성찰한 결과인가? 지금 그들이 스스로 생각할 공간을 가지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선교가 이전의 선교와 불연속성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면에서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영화에 대해 논란거리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호던 불호이던 많은 의견을 제시할 수 있게했다는 면에서 그저 놀라운 감동을 하고 나오는 영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평가를 하게 됩니다.
이미 충분히 긴 글이 된 것 같아 이만 줄입니다. 구월에도 깊은 성찰이 있기를... 샬롬.
2026. 09. 01
권성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