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품에서

징비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에 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서신이라는 말 대신 엽서라고 표현했지만 거의 편지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2020년 새해가 되었습니다. 지난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가정과 사역에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얼마 전 지인들과 안동에 다녀 왔습니다. 역사를 품고 있는 지역답게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그 중 시선을 사로 잡고 좀 더 알고 싶게 만든 것은 영의정을 지낸 유성룡 선생의 징비록이라는 책이었습니다. 징비라는 말은 시경에 있는 '여기징이비후환(予其懲而毖後患)' 즉,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뒤에 환난이 없도록 조심한다.'는 말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징은 징계이지만 오늘날의 의미로는 회고하고 반성하는 것, 다시말해 반추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겠습니다. 비는 삼가하고 경계한다는 말이니 그런 반추를 통해 새롭게하고 앞으로의 일을 조심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징비록은 임진왜란에 대한 유성룡 선생의 반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서울에 올라 와  징비록의 번역서를 사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역사에 무지한 자신을 반성했고 임진왜란 중 보여 준 지도층의 한심함에 속이 터졌고 그 와중에 홀로 빛나는 이순신 장군의 공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몇 가지 생각을 나눕니다.

첫째, 유성룡 선생의 빛남은 이순신 장군을 등용한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무능한 조정과, 왜군 그리고 원군으로 온 명나라 장수들의 교만함,  게다가 조정과 별반 다르지 않는 여러 지역의 장수들 등 이 모든 복잡한 관계들 사이에서 그들을 엮어내고 자신의 위험과 상관없이 바른 방향을 잃지 않으려했던 그의 인품과 지혜는 '참 탁월한 분이 계셔 나라가 완전히 망할 것을 구해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사무엘이 다윗을 세우듯 탁월한 리더는 바른 한 사람을 찾아 내는 것인데 그런 면에서 이순신이라는 한 사람을 세워 나라를 구한 그의 통찰은 아마도 작은 것을 놓치지 않은 생각의 깊이에서 왔다고 보여집니다. 이런 징비록을 기록한 것을 통해 미루어 짐작해 봐도 그는 늘 미미한 것에서도 반추와 의미를 찾아 교훈을 삼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문신이었으니 '반추하는 실천가'이기 보다는 '실천하는 반추가'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둘째, 예외 없이 한심한 지도층의 모습은 그것이 특별한 사람들만의 문제 아니라는 교훈을 갖게 했습니다. 평화로운 시대가 오래 지속되면 자신들이 어떤 형편에 있는지를 알길이 없기 때문에 전쟁이 닥쳤을 때야 드디어 그 수준이 드러나게 됩니다. C. S. 루이스가 말한 것 처럼 '우리가 어떤 것을 얼마나 믿는지는 그것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You never know how much you really believe anything until its truth or falsehood becomes a matter of life and death to you)'고 한 말과 맥을 같이 합니다. 특히 형식의 문제에 매여 있는 때가 위험한 때임을 알려주는 신호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예로 우복룡이라는 한 고을의 현감은 전쟁이 일어나 집결지로 급히 가는 다른 지역 군사들이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지 않았다고 모두 붙잡았는데 그들이 공문을 보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군사들로 그들 모두를 죽였다고 하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게다가 그는 그 일을 포함하여 공을 세웠다고 승승장구했다합니다. 평화로운 시대에 폼나는 일이 실제 상황에 관점에서 보면 아주 한심한 일임을 평화로운 시대에 깨우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우리가 하고 있는 선교가 바른 선교인지는 우리가 철수한 후에 혹은 그와 비슷한 위기가 와 봐야 겨우 판단이 될 것 같습니다. 평화로울 때 우리 모두에게 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입니다. 당시 선조는 평양성으로 갔다가 거기서도 피난하여 더 북쪽으로 갔는데 육지는 거의 초토화 되고 일본의 수군이 서해를 통해 올라오면 나라가 망하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많은 모함이 있었지만 그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적을 물리쳤기에 후에 명나라의 원군이 와 겨우 나라가 망하는 것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러가기로 한 왜군이 부산에 머물러 계략을 꾸미고 결국 정유년에 다시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이 때 명나라에서 진린이라는 수군 제독이 와서 이순신 장군과 합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진린은 성품이 사납고 다른 사람들과 대부분 뜻이 맞지 않았기에 많은 대신들이 이제 이순신의 군사가 장차 패전할 것이 뻔하다고 말했답니다. 명나라의 제독이니 이순신 장군 쯤이야 우습게 볼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진린이 이순신 장군이 전사했을 때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진린이 처음 도착했을 때 이순신 장군은 왜군의 배를 패배시키고 적군 40명의 머리를 베어 왔는데 그것을 진린에게 주어 그의 공을 삼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모든 일을 통해 사나운 진린 조차도 감명받지 않을 수 없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평화로운 시대, 모두가 자신의 업적에 몰두하고 형식에 빠져 있을 때 바름을 지키는 '반추하는 실천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희망을 줍니다. 새해에는 여러분 모두가 이런 리더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만 글을 줄입니다. 새해 아침부터 무거운 글이 되었습니다. 시대가 엄중하니 모두 삼가 행실을 바르게 하고 주신 사명을 늘 반추하는 일이 필요해 보입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샬롬.

2020년 1월 1일

권성찬 올림

  • 박민부 2020.01.01 2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권성찬 대표님의 글은 읽을 때마다 재미있고 유익하네요.

    새해 첫날 글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모두들 새해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