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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구간 마라톤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에 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서신이라는 말 대신 엽서라고 표현했지만 거의 편지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교사님들,

오늘은 곧 출발을 앞두고 인천 공항에서 소식을 드립니다. 자카르타에 며칠 다녀 올 예정입니다.

선교를 준비하던 시절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A국으로 들어가고 얼마 안되어 가지게 된 선교에 대한 그림은 구간 마라톤이었습니다. 아마도 당시 상황이 꽉 막혀 있던 터라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생각해 낸 개념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금 길거리에 아무도 나와 있지 않은 어느 구간을 뛰고 있는거야'라고 위로하며 견뎌내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저희가 섬기던 곳은 몇몇 사람이 구간을 나누어 뛰어 왔지만 아직 마지막 구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 곳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들도 본인이 마지막 구간 주자가 아니라 처음 혹은 중간 어느 구간을 뛰고 있다는 인식을 벌써 하셨을 줄로 압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출장을 가는 인도네시아의 이 선교 단체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제가 속한 단체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대표로 섬길 때 자주 방문하던 현지 단체입니다. 선의에서 시작된 외부의 도움이 현지 단체의 의존도를 높이면서 이 단체의 리더는 다른 나라와 마찬 가지로 미국의 펀드 지원 단체에 매년 지원 요청서를 올렸습니다. 특별히 자신들 스스로 인도네시아 사역자를 훈련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 그 훈련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수천만원 정도의 지원 요청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스스로 하기 위해 타인에게 모든 걸 의지 하는 것이 뭔가 잘 안 맞는 일임에도 그 때는 '스스로' 하겠다는 그 놀라움 때문에 지원 요청이 정당화되던 때였습나다. 하지만 당시 서구 펀드 지원 단체들도 서서히 외부 도움의 문제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 때여서 그들의 바램대로 되지는 않았는데 저는 그걸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리더가 바뀌었는데 여러 불리한 조건을 가진 리더였습니다. 우선 화교가 아니어서 화교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던 이 단체 이사 및 지원 교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될지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번역 단체에 번역 사역자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주류 종족이 아닌 소수 종족 출신이었습니다. 물론 나이는 30대로 젊은 리더였습니다.

물론 장점도 많았습니다. 열정이 넘쳤고 열정이 넘치는 많은 젊은 리더들이 잘 듣지 않는데 이 친구는 잘 배우려는 의지를 가진 리더였습니다. 당시 저희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선교학적 반추 중심의 세미나를 통해 이렇게 외부 지원 중심으로 의존도가 높은 단체들을 도와 스스로 선교하는 개념을 가지도록 돕고 있었는데 이 리더는 그것을 잘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번 그 단체에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하였습니다. 물론 그런 시도는 오랜 관행과 대치되는 일이라 '구간 마라톤'의 개념을 가지고 언젠가 변화될 것을 기대하며 진행하던 방향이었습니다. 방향을 바꾸는 일은 당장의 성과를 잠시 접어두어야 하는 일이기에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2016년 사역을 마무리 할 때 까지 그래도 가장 변화를 많이 가져 온 단체가 바로 인도네시아의 이 단체였습니다. 동일하게 도운 다른 여러 나라의 단체들은 눈에 보이는 지원을 포기 하지 않아 세미나는 세미나 대로 하면서 그 지원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나 이 인도네시아의 단체는 과감하게 지원 받는 것을 잠시 중단하고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을 용감하게 진행했습니다. 그 사례들을 다 나누기가 어렵네요.

암튼 3년전 저는 그 사역을 떠났고 단체 메일을 사용하지 않아 그 친구와도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어느 모임에서 그 친구가 제 후배 선교사를 만나 제 개인 메일 주소를 알고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젊은 나이에 리더를 시작한 터라 아직도 40대인데 올해 말로 대표 사역을 내려 놓는다고 합니다.

지난 3년간 인도네시아 안에서 30개의 새로운 종족 가운데 이 단체의 성경번역 사역이 시작되었고 약 40여명의 선교사들이 새롭게 합류했다고 전해 왔습니다. 그래서 그 새로운 사역자들에게 '선교학적 반추' 모임을 인도해 달라도 요청해 왔습니다. 마침 요한복음을 공부하고 왔기에 이번에는 요한복음을 함께 보면서 우리의 선교 인식을 새롭게 하려고 준비하여 이제 공항 출발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들과 3일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을 그들의 선교 상황에 적용하고자 발표하고 나누는 것을 지켜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시작 전에 주일 예배를 현지 교회에서 드리려고 했는데 마침 그 교회에서 설교를 부탁해서 현지 교회와도 교류하게 될 예정입니다. 이 현지 교회는 인도네시아 주 종교를 믿던 분들이 회심하여 만들어진 교회여서 배울 것이 많은 교회인데 말씀까지 나누게 되어 다소 흥분되는 상황입니다. 이 교회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씨 뿌리고 열매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에 구간 마라톤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뿌린 씨의 열매를 보러 가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미 그런 말씀을 주셨네요.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126:6)

2019년 11월을 보내며

권성찬 드림

사진: 형제의 결혼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