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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디아즈와 조한규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에 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서신이라는 말 대신 엽서라고 표현했지만 거의 편지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교사님들,


오늘도 평안하신지요? 오늘은 디아즈와 조한규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몇몇 분들을 제외하고 프란시스코 디아즈나 조한규를 들어 본 분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신 성경번역을 시작한 카메룬 타운젠드나 우리나라에 온 아펜젤러 선교사는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요.

선교는 누구에게서 시작되는가? 이런 물음에 하나님의 선교라고 말을 하면서도 우리는 선교 역사, 특히 개신교 선교 역사는 마치 몇몇 선교사에 의해 시작된 것으로 여깁니다. 각각 해안, 내지, 미종족 선교 시대를 연 윌리엄 캐리,  허드슨 테일러, 카메룬 타운젠드, 도날드 맥가브란에 의해 개척되고 시작되었다고 배우고 가르치고 기억합니다.

타운젠드는 1917년 21살의 청년으로 과테말라에 갑니다. 성경을 판매하는 단기 선교사로 간 겁니다. 과테말라의 공용어는 스페인어여서 스페인어 성경을 판매했습니다. 그의 짐을 들고 함께 이 전도 여행을 다닌 사람이 디아즈였습니다. 디아즈는 칵치켈이라는 종족 사람이었는데 칵치켈 사람을 만나 복음을 전할 때면 디아즈가 통역을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과테말라에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라티노 외에 여러 종족 사람들이 60%나 된다는 것을 알았고 결국 타운젠드는 디아즈의 언어인 칵치켈 종족의 언어를 배우고 디아즈와 함께 칵치켈 성경 학교도 성경 번역도 시작하게 됩니다. 학교를 세우고 성경을 번역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그 종족 사람에게서 나올 수 없고 여러가지로 풍성한 파송국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지만 종족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꿈은 현지인 디아즈에게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조한규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습니다. 초기 한국 선교에 애를 먹고 있던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오랜 선교 경험을 통해 삼자원리를 적용하고 있던 존 네비우스를 초청하여 새문안 교회에서 수련회를 하고 나서 삼자 원리를 적용한 여러 정책을 만들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선교사가 직접 전도하기 보다 전도자를 양육하는 것으로 전환하고 모든 문서는 한글로만 기록하기로 하며 특별히 새롭게 한글 성경을 번역하기로 결정한 것 등입니다. 물론 만주에서 번역된 존 로스 역이 있었지만 북쪽 방언이 많아 전국적으로 사용하기는 어려웠기에 새롭게 번역 위원회를 구성했고 아펜젤러는 그 위원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망한 원인도 목포에서 열리는 성경번역 위원회에 참석하고자 배를 타고 가다가 군산 앞바다에서 배가 침몰하여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군산에 가면 아펜젤러 기념관이 있습니다. 그 때 아펜젤러만이 아니고 한국인 번역 위원이고 아펜젤러를 돕던 한국인이 함께 사망하였는데 그가 조한규입니다. 당시 선교사와 한국인 조사가 한팀이 되어 성경을 나누어 번역했는데 아펜젤러와 조한규가 한팀이 되었습니다. 배재학당에서 한문을 가르치던 한학자이며 기독교인이 그가 외국인인 아펜젤러와 함께 성경번역에 공헌한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카메룬 타운젠드, 아펜젤러와 같은 선교사들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 당시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나고 낙후된 지역에서 수고를 감당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한 것은 참으로 귀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그 곳에 계셨고 그 곳에서 여러 현지인들을 통해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만주에서 처음으로 우리 말 성경을 번역한  존 로스의 헌신도 귀하지만 당시 반입이 어렵고 검문이 심한 상황에서 그 성경을 낱장으로 만들어 새끼를 꼬아 짐을 운반하는 줄로 사용하고 국내로 들여와서는 다시 풀어서 성경책을 만들어 보급하느라 국경을 수도 없이 넘었던 서상륜 등 한국인 전도자들의 헌신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소래에 처음 교회가 세워진 것은 그러한 헌신의 결과입니다.

역사를 하나님의 시각에서 그리고 현지인의 관점에서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오늘 계신 곳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도록 보내주시는 그 친구를 존귀히 여기시는 지혜를 간구합니다. 20여년 전 척박한 아프간 땅에서 그렇게 하나님께서 보내 주셨던 사랑하는 친구 사베르, 아핫, 라힘, 하니프... 이런 친구들이 그리워 지는 날입니다. 샬롬.

 

2019년 9월을 보내며

권성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