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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에 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코로나가 여전히 주위에 있습니다. 코로나는 비대면을 강화시켰고 화상회의 등 우리 생활과 사역에 IT 사용을 더 빠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여기저기 마스크를 넣고 다니고 노트 기능을 가진 핸드폰 하나로 웬만한 일은 다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위협하는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IT의 부족이 아니라 자꾸 마스크를 놓고 다니는, 심지어 핸드폰도 여기 저기 깜빡 놓고 다닐 때가 많은 저의 건망증입니다. 이러한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슨 또 다른 엄청난  IT 기술이 아니라 '끈'입니다. 마스크에는 아내가 만들어 준 끈을 달고 늘 목에 걸고 다닙니다. 핸드폰을 자주 놓고 찾으러 가니 교회 권사님은 핸드폰 줄을 사 주시겠다고 합니다. 스타일 구길까봐 아직 핸드폰 줄을 안하고 다니기는 하지만 곧 줄줄이 끈을 매고 다닐 날이 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끈이 없으면 IT도 힘을 못쓰는 셈입니다.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비대면 사역도 어렵다는 한 선교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오래전 '끈'이라는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최고의 등반가로 여기는 박정헌씨는 후배 최강식씨와 히말라야 촐라체 북벽을 절벽에서 줄에 매달려 자는 비박을 하며 4일만에 등정에 성공합니다. 내려오다가 후배 최강식씨가 빙하의 틈인 크레바스에 빠지고 맙니다. 그 순간을 박정헌 씨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조금만 기다리라. 형이 구해 줄게." 나는 있는 힘껏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다. 강식은 자일 끝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강식과 나 사이에는 가는 끈 하나가 전부였다.'
몸무게가 더 나가는 후배는 줄 밑에 달려 있고 자칫 모두 목숨을 잃게 될 상황이니 그 끈을 끊어야 할지 고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침내 살아 돌아왔습니다. 동상으로 인해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라내야 했지만...

끈이 없으면 IT도 힘을 발휘 못하는 상황과 끈 하나로 연결된 절체 절명의 순간은 비록 두 개의 다른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사역이 아무리 변해도 그리고 위기가 와도 '끈'이 연결되어 있는 한, 아니 오직 그 한도 내에서만 가능하다는 교훈을 줍니다. 나와 주변의 이웃이 여전히 연결되어 있는지 오늘 그 끈을 한 번 살짝 당겨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끈끈한 관계를 지속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시절 늘 강건하십시오. 샬롬.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4:3)

2020년 11월 1일
권성찬 드림

 

  • 강광석 2020.11.07 1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시영 시인에 ‘친견’이라는 시에는 달라이라마와 한 승려의 일화가 등장합니다.

    달라이라마가 중국감옥에서 풀려난 어느 승려를 인도에 다람살라에서 만났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심햇느냐’ 이렇게 안부를 묻자 그 승려는
    미소를 띄며 이렇게 대답하죠.

    ‘하마터면 저들을 미워할뻔 햇습니다.’

    미움이 한가득 쌓이게되면 공동묘지로 달려간다는 어떤 사람은
    ‘그곳에만 서면 울적한 마음이 싹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용서는 산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이 밤에 용서하는 마음이 들어올 수 있도록 가슴한켠을 비워놓으면 어떨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