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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흑산 사람 '창대'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에 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의 분야가 위축되어 있고 영화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미나리의 오스카 수상 소식으로 영화인들에게 위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최근에 '자산어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흑산으로 유배갔던 정약용의 둘째형 정약전을 다룬 영화입니다. 좀 더 정확히는 약전과 흑산에서 만난 창대의 이야기, 더 나아가 현재의 체제를 개선하려는 의지와 그 보다 더 큰 생각 사이의 대비를 보여주었습니다. 굳이 선교와 비교 하자면 현재 진행하는 선교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 시작했던 '방콕포럼'과 선교의 대안을 생각하며 모이던 '설악포럼'의 차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생각할 것이 많은 주제들 입니다.

 

약전과 창대

 

배다른 형제이긴 하나 맏형인 약현, 믿음으로 인해 조선 성도 중 순교 1세대에 속한 셋째 약종, 그리고 목민심서 등 우리에게 익숙한 막내 약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둘째 약전을 이렇게 생생히 살려낸 것만으로도 이준익 감독은 '동주', '박열'에 이어 또 다시 역사 속의 사람을 우리 앞에 살려 내었습니다. 영화 박열을 보며 '왜 나는 이런 사람을 모르고 있었지?'라고 반성하던 그 때가 생각났고 나름 정약용 일가에 관심을 가지고 지내 온 저는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강진에서 약용이 목민심서를 비롯하여 대단한 책을 저술할 동안 흑산에서 어류도감이나(?) 만들고 있었던 약전은 마치 산족 지역에서 교회를 50개 넘게 개척하는 선교사와 어느 척박한 골짜기에서 지역 사회 개발이나(?) 하고 있는 선교사를 비교하는 것 같았습니다. 혹은 대형교회 부목을 거쳐 또 다른 큰 교회 담임으로 간 목회자와 시골 도시 재개발 지구 안에서 인문 서점을 열고 지역 주민과 소통하는 전도사를 비교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둘 다 필요한 일이지만 약전을 보며 '형 만한 아우 없다'고 한 정조대왕의 말이나 자신의 목민심서 초벌을 형에게 보낸 약용의 태도에서 '물고기'가 '목민'보다 가볍지 않고 '지역사회' 안에 섞이는 것이 '교회개척'보다 넓고 깊을 수 있음을 다시 보았습니다.  

 

여러 주제를 다루기는 '품에서'의 속성 상 어렵고 다만 일전에 '디아즈와 조한규' (2019년 9월 품에서)에서 생각했던 주제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흑산에 유배간 약전은 선교사와 같은 외부인이고 흑산 사람 창대는 내부인 혹은 현지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창대의 경험과 약전의 지식이 만나 이룬 어류 도감 '자산어보'는 창대없이 약전없고 약전없이 창대없음을 확인해 줍니다. 둘 사이에 갈등이 없지 않으나 자신의 생각과 다른 창대를 끝내 막아서지 않는 약전에게서 집 나가려는 아들을 막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이 보이고 마침내 돌아 온 창대에게서 스스로 성찰하는 '자신학화'의 희망을 봅니다. 진리를 깊이 이해하는 선교사도 필요하고 자신의 일상을 반추하는 시각으로 볼 줄 아는 현지인도 필요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영화가 약전과 창대의 관계를 다소 수직적인 관계로 그렸다는 것입니다. 마치 여러 선교지의 선교사가 현지인을 그렇게 대하듯이 말입니다. 반상의 구별이 뚜렷했던 시대라 그렇게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약전은 자산어보 서문에 창대의 호인 덕순을 넣어 덕순 창대라 불렀는데 이는 그들의 관계가 평등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약전이 가졌던 생각에 근거한다면 평등이 더 맞을 것 같고 제주로 유배갔던 약전의 조카 정마리아가 관노임에도 불구하고 그곳 대정 사람들을 평생 섬겼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정씨 일가가 가진 기독교적 정신은 초대교회가 보여준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됨'을 실천한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그렇게 선교사와 현지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 더 나아가 서로 섬김의 관계가 될 때 세상은 코로나와 상관없이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리에서도 이런 하나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시작은 약전이 하나 끝은 창대가 하리라. 썰렁 및 샬롬.

 

2021년 5월 1일

 

권성찬 올림

 

추신: 글이 잘 이해가 안되면 '자산어보'를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