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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서

아프간 소회 (1)

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에 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에게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평안하신지요? 오늘은 평안하지 못한 아프간 이야기를 좀 나누어 보겠습니다. 9월 1일에 보낼 이 '품에서'를 당겨 쓰게 된 것은 아시다시피 아프간 상황이 예상보다 빨리 변화되어 여러 분들로 부터 아프간에 대한 생각을 나누도록 요청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96년 탈리반이 남부 칸다하르를 출발하여 점차 세력을 넓혀 가고 있을때 저희 가정은 아프간 어느 도시에 있었습니다. 점령 속도가 빨라 2주 후면 저희가 사는 도시를 점령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외국인, 특히 기독교 단체에서 일하던 사람들 중에 현지인 사이에서 '기독교인이 된 것 같다'라는 의심을 받고 있던 형제들이 먼저 신속하게 나라를 떠났고 이어서 외국인들이 일단 몸을 피했습니다. 아직 단체에 소속되지 못한 저희 가정은 어정쩡한 상태로 있었는데 그 사이 예정보다 빨리 3일만에 탈리반이 저희가 살던 도시를 점령했습니다. 그날 영문도 모른채 시장에 야채를 사러갔던 저는 길에 바리케이트가 쳐 있고 빨리 집으로 가라는 군인들의 말을 듣고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총성이 울렸습니다. 그리고 별 전투도 없이 탈리반이 점령을 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와 흰 깃발을 꽂고 시가 행진을 하는 탈리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탈리반이 통치하던 내내 그곳에서 일하는 경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01년 7월 저희는 한국 본부 사역으로 나왔고 그해 9월에 911이 터지고 이어서 탈리반 정권이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지난 20년간 많은 사람들이 아프간의 발전을 위해 정열과 시간과 자원을 바쳤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기대처럼 되지는 못했습니다. 8월 내내 마음이 아프간에 가 있었고 마치 25년전 그 때를 다시 겪는 것 같았습니다. 

20년간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어도, 정부군을 35만명이나 훈련하고 최신식 무기를 주어도 탈리반을 막지 못한 것을 두고 원조나 구호에 의한 것은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된 것은 그 나마 소득이고 선교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이것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할 부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 정도 기본적인 교훈 외에 몇 가지 기도 제목으로 아프간에 대한 저의 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1. 탈리반 고위 율법학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현 상황에서 가장 긴급한 기도라고 생각됩니다.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를 기치로 세운 탈리반은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 법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하지만 적용이라는 것은 늘 해석이 필요하고 그 해석이 강한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제가 있을 때 문해교육을 위해 책을 만들어야 했는데 외국인이 책을 만들 수 없고 책에 그림을 넣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프간 현지 교육 단체 책임자를 알게 되어 방문해 보니 그들이 가진 책에 그림도 있고 문장도 섬뜩한 문장이 아니라 교육적인 내용이었습니다. 탈리반 하에서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고 물어보니 그 단체 책임자가 탈리반의 종교 선생님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해석하는가? 그리고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의 여부가 중요합니다. 탈리반 고위 율법학자들이 이슬람의 여성 이해, 소수 민족에 대한 배려, 사회 활동 등에 대해 자신들이 생각하는 본질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현대에 맞게 해석한다면 예상되는 많은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가 절실합니다.

 

2. 20년간 여러 곳에서 쏟아 부은 노력의 씨앗이 땅속에서 자라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가 듣는 외적인 노력의 실패, 즉 정부군 등에 대해 실망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민간의 노력이 지난 20년간 있었습니다. 기독교 사역자들의 노력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만일 20년간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탈리반 치하에 길들여진 세대가 성장했을 것이고 그것은 미래가 더욱 암울한 일입니다. 감사하게도 20년간 탈리반을 겪지 않은 비교적 자유로운 세대가 생겨났고 당시 10세 이하를 계산하면 현재 30세까지의 세대가 탈리반에 길들여지지 않은 세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들이 앞으로 당할 고통은 헤아리기 어렵지만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그들이 자유로움을 경험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아프간의 미래를 위해 아주 중요한 씨앗이 될것이라고 봅니다. 이 씨앗이 땅속에서 뿌리를 깊이 내리는 시간이 되고 언젠가 땅 밖으로 나오는 날이 올때 귀한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바라기는 탈리반 정부가 안정되고 외국과 소통이 가능해 지고 외국의 도움을 바랄 때 여성, 소수 민족, 교육, 문화, 관광과 같은 분야에 한정하여 도움을 주면서 접촉면이 넓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  일단 피해야 할 사람들이 안전하게 피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카불 공항에 몰려 들었던 사람들, 그 외에도 다른 루트를 통해 살던 곳을 떠난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다면 모두 눈시울을 붉힐 것입니다. 탈리반이 온다고 모두가 탈출하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 아는대로 외국 기관에서 일을 했던 사람들이 앞잡이로 몰려 처형을 당할 위험이 있겠고요. 그 외에도 개인사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상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나르기스는 탈리반 굴부딘과 강제로 정혼이 된 사이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 나르기스는 좋아하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습니다. 굴부딘이 돌아오면 나르기스도 그리고 그 남편도 살해될 것입니다. 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상상이 가능합니다. 마리암은 여성 인권을 위해 글을 쓰고 여러 곳에서 강연도 했습니다. 탈리반에 대한 부정적인 말도 했고 기사화 되었습니다. 탈리반이 들어오면 그녀을 찾아 낼 것입니다. 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행기 바퀴라도 붙들고 탈출해야 할 이유가 있었던 사람들이 너무 많을 것입니다. 선교사와 자주 만났던 것을 주변이 모두 알고 있는 라힘 형제는 어떨까요? 이들이 우선 안전하게 피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4.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있었을 당시는 공식적으로 믿음의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하에 믿음의 공동체가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20년간 직, 간접 사역을 통해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고 드러난 믿음의 공동체가 특히 수도 카불을 중심으로 존재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를 요청하고 싶습니다. 주님을 믿는 공동체가 더욱 주님을 의지하며 담대해 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혹 순교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 두 손 벌려 맞으시는 주님을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아직 믿음을 가지지 못했는데 기독교인을 접촉했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맞이하게 될 형제 자매들을 주님께서 보호해 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피할 수 있다면 피해서 더욱 강건한 믿음을 가질 기회를 얻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아프간의 하사니. 이런 그림을 앞으로도 볼 수 있기를.

 

제가 현지인 선교를 너무 공격적으로 하는 것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마 아프간에서의 이런 경험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정권의 번복이 심하거나 안정되지 못한 지역에서 외국인과 접촉한 것, 특히 이슬람 지역에서 기독교인과 접촉한 것이 현지인에게 해가 될 수 있는데도 드러내놓고 선교하는 것은 사실 무책임한 일입니다. 아직 믿음의 단계에 이르지 못했음에도 기독교인과의 접촉이 빌미가 되어 제거 대상이 된 아픈 사연이 당시 도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는 과연 복음이 무엇으로 전해지는가에 대한 생각이 깊을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 19 이후에 IT 사용이 보편화 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고 그처럼 대면하지 않고도 전해 질 수 있는 지식 전달이 비대면으로 가능해 진다면 대면하고 함께 사는 선교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차이가 바로 선교의 본질이 될 것입니다. 그 동안 선교사로서 현지에서 했던 일들이 모두 비대면으로 대체가 가능하다면 사실 비본질에 시간을 많이 사용한 셈입니다. 

하산, 아핫, 굴부딘, 사베르, 나지불라, 파리드, 하니프, 라힘, 나르기스 등 수 많은 아프간 형제 자매들, 특히 기독교인들과 일했던 현지 형제 자매들의 안전을 빌며 오늘 곳곳에서 사역하는 선생님들께서 함께 일하며 만나는 현지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예수를 나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2021년 8월 19일

권성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