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서는 한달에 한 번 혹은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GMF에 속한 가족들 그리고 이 공간을 찾아 주시는 선교 관심자 분들께 보내는 일종의 대표 서신입니다.
곳곳에서 살고 또 사역하시는 사랑하는 선생님들,
안녕하세요? 드디어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한풀 꺾인듯 합니다. 무더위처럼 지치게 하는 여러분 곁의 그 무엇도 곧 꺾이게 되길 바랍니다.
1. 지난 6월 화성에서 있었던 배터리 공장 화재 사고는 납품 기한에 맞추려 한 무리한 생산이 그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기한을 맞추려고 숙련이 필요한 작업에도 불구하고 인력업체를 통해 미숙련 노동자를 투입했다고 합니다. 하루 목표는 평소보다 2배 높게 잡았고, 따라서 불량률은 3배에 이르렀는데 불량품을 겉만 적당히 두드려 맟추고 나중에는 그마저 하지 않아 이미 위험이 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행하다가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안타깝게 고인이 된 23명 중에 중국 동포가 17명에 이른 것도 그런 사정이 있었다고 합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동아일보 사설, 2024, 8, 26)
2. 그런 무리한 일이 선교에도 일어납니다. 10여년 전, 성경번역이 책의 번역이라는 과업으로 축소되고 있음을 감지하고 사역의 선교적 본성을 회복하려고 성찰하던 시기에 단체의 리더십 팀에서 섬긴 경험이 있습니다. 이런 성찰과 변화는 당분간 과업의 속도가 둔화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돈이라는 힘이 있고 이런 방향에 동의하지 않는 세력이 독자 행동을 시작했고 자극적인 선교 구호로 더 공격적인 모금을 한 다음 오히려 정반대로 이전보다 더욱 과업의 가속화를 추진했습니다. 번역이 필요한 지역에 들어가 다수의 현지인을 고용하고 간단하게 교육한 후 대량 생산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성경이 순식간에 번역되어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삶을 헌신하는 사람들을 우습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여러 면에서 숙련이 필요한 전문가의 작업을 다수의 미숙련 알바로 대체한 셈입니다. 배터리 폭발과 같은 가시적인 사고가 보이지는 않지만 번역이 빨리 되니 좋다고 박수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3. 인도네시아 각처에서 성경번역 선교에 헌신한 젊은 현지 사역자 60여명의 훈련을 섬기고 엊그제 돌아왔습니다.
이들은 성경번역에 필요한 훈련 중 언어학에 관련된 훈련을 소프트 스킬이라고 이름하여 훈련을 지속하고 있고 그 보다 큰 관점에서 선교학적 성찰, 하나님의 선교 등의 훈련은 하드 스킬이라고 이름하여 진행하고 있는데 저는 이 하드 스킬을 섬기고 왔습니다. 언어학과 선교학이 잘 버무려져야 하는 성경 번역의 사역이 언어학으로 치우치면서 생긴 결과가 과업 중심이고 결국 대량 생산까지 이어진 것인데 현지 단체가 스스로 이러한 방식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두 가지 훈련을 만들었다는 것이 감동이었습니다. 게다가 소프트 훈련은 외국인이 아니라 이미 경험을 가진 현지 번역자들이 맡아 훈련을 감당한다고 합니다. 곧 하드 스킬도 스스로 하게 될 줄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스킬이라는 이름도 마음에 안들고 소프트와 하드를 별도로 진행하는 것도 장차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되지만 그 역시 현지인 스스로의 성찰이 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성경번역 선교회의 창립자인 타운젠드의 첫 성경번역이 동시에 100여개의 교회 개척과 함께 이루어진 통합적 사역이었음을 상기한다면 그 후 언어학과 선교학의 분리를 가속화한 외부인 중심의 선교를 현지인들이 스스로 치유해 가는 여정에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외부에서는 젊은 선교 헌신자는 고사하고 80년대 생 번역 선교사의 헌신도 찾아 보기 힘든 시기에 2000년대 생을 포함한 젊은 현지 선교사들의 열기를 보면서 앤드류 월스가 말한 '기독교 선교는 중심이 연쇄적으로 이동하는 선교였고 그렇게 이동함으로 오히려 본질이 살아남았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변하지 않으면 곧 선교의 화석이 될 것이라는 경고의 마음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샬롬.
2024년 9월 1일
권성찬 드림
추신: 우리가 옛날에 그랬듯이 참 단순한 찬송과 단순한 율동으로도 행복이 넘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