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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반공/삼선교: 삼위일체적 선교와 교회

시작하면서

 

이 공간은 선교의 본질에 대한 묵상으로서 삼위일체적 선교에 대해 반추하는 공간입니다. 레슬리 뉴비긴의 책 (오늘날의 선교를 위한 삼위일체 교리, Trinitarian Doctrine for Today's Mission) 에서 몇 몇 구절들을 인용하고 그 구절들을 반추하는 방식으로 시작해 보려 합니다.

우선 이렇게 삼위일체적 선교를 반추하려는 이유를 비유를 통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성도들이 지정 헌금을 하면 그 지정된 곳으로 전액을 보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지정 헌금이 많아집니다. 꽤 늘어났다는 것이 인식될 정도 입니다. 당회에서는 한 가지 결정을 합니다. 지정 헌금에 대해 10%의 행정비를 부과한다는 결정입니다. 아직 교회 재정에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결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시간이 흘러 이제 지정 헌금은 지정되지 않은 헌금보다 더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당회는 모여 새로운 결정을 해야 할 상황입니다. 지정 헌금의 50%를 행정비로 부과해도 교회 예산에 타격을 줄 정도가 되었습니다. 50%, 60% 그렇게 행정비를 늘려가는 것이 답일까요?

상황의 변화는 긴급한 대응을 요구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단순히 긴급한 대응으로 해결될 사안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아직 큰 문제가 아니라 10% 행정비를 부과하는 결정 정도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 때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 또 하나의 대응, 즉각적 대응보다 더 깊은 대응, 즉 왜 성도들이 지정 헌금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되었는지? 교회의 재정 사용에 대해 어떤 불만족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깊은 숙고를 진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상황의 변화는 이전에 본질처럼 혹은 비본질이었으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것을 새롭게 드러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상황 변화에 대한 전략적 대응이 아니라 본질 대응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선교 역시 상황의 변화로 인해 새로운 전략 혹은 새로운 운동을 계속 만들어 내고, 특별히 한국 교회는 그런 외국산 선교 운동을 직 수입해 왔던 것을 떠올린다면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본질 논의를 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공간에서는 이미 이 문제를 보았던 선각자들의 글을 인용하고 숙고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하려고 합니다. 덧글을 통해 이 공간에 오시는 분들의 고견을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권성찬 드림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호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