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선반공/삼선교: 삼위일체적 선교와 교회

뉴비긴의 "오늘날의 선교를 위한 삼위일체 교리" 1

1. 에큐메니칼 관점에서 본 선교 활동 (Missions in an Ecumenical Perspective)

 

1) We shall begin with the event which took place at New Delhi in November 1961, when the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and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became one body (11).

 

뉴비긴은 논의의 출발점을 IMC (국제 선교 협의회) 와 WCC (세계교회협의회)가 통합된 1961년의 시점에 놓는다. IMC는 1921년에 결성된 선교 협의회로 1910년 에디버러에서 열린 세계선교사대회 (World Missionary Conference, 이하 WMC) 의 전통을 지속하기 위해 결성되었고 이후 선교사 대회 (WMC)를 주관하게 된다. 1928년에 예루살렘 대회, 1938년에 인도 탐바람 대회, 1947년 에 캐나다 휘트비 대회, 1952년에 독일 빌링겐 대회, 1957/58년에 가나 아치모타 대회 등을 주관하였다. 당시 선교계의 가장 큰 모임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세계교회협의회 (WCC)는 1948년에 세계 여러 교단들이 연합하여 세워졌다. 두 기관 모두 1910년 에딘버러 대회를 그 뿌리로 하고 있지만 IMC는 선교 중심, WCC는 교회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두 기관이 1961년 통합되었다. 선교와 교회가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형성되었을 것이다. 뉴비긴은 바로 이 시점을 선교를 새롭게 보는 출발점으로 잡았다. 선교와 교회가 통합되었다는 것이 가지고 있는 함의를 깊은 차원에서 생각해 보기를 원했던 것이다.

 

2) If one looks for a point from which to mark the beginning of the process (and such points are always somewhat arbitrary), one would find it in the World MIssionary Conference at Tambaram in 1938, with its emphatic announcement of a 'church-centric' view of the missionary task (11).

 

뉴비긴은 이러한 통합이 갑자기 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으로 거슬로 올라가 1938년 IMC가 주관한 인도 탐바람 선교사 대회에 출발선이 있다고 보았다. 그 대회에서 선교를 '교회 중심적' 시각에서 본 것, 그리고 그 이후 그러한 생각들이 발전되어 선교와 교회가 통합되기에 이르렀다고 보고 있다. '교회 중심적' 이란 말이 문맥에 따라 긍정 혹은 부정적으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선교를 말하는 문맥에서 '교회 중심'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선교와 교회가 분리된 상황에서 선교를 '교회'의 시각에서 바라 보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기 때문에 문맥 상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고 실제로 이러한 시각으로 인하여 분리되어 있던 두 기관이 통합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뉴비긴은 말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 한국 선교의 현 주소를 잠시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선교와 교회가 의미상으로 통합되어 있는가? 선교 대회는 교회 중심적인 시각에서 열리고 있는가? 밴 앤겐 (Van Engen, God's Missionary People: Rethinking the Purpose of the Local Church, 1991)은 선교 연구에서 가장 무시된 영역이 교회론이라고 지적한다. (Around the world one of the most neglected areas of missiological research has been ecclesiology. 20)

 

3) Several strands of experience have contributed to these expressions of the nature of the missionary task (11).

 

이렇게 선교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된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 뉴비긴은 어떤 원인을 보았을까?

 

The experience of the missionary movement during past two hundred years, and as its fruit, the coming into existence of Churches in all parts of the world, have brought about a slow shift of perspective in the thinking about the Church even among those not directly involved in missions (11)

 

첫째로 교회의 지형 변화이다. 선교의 결과로 세계 곳곳에 교회가 세워졌고 따라서 선교에 참여하지 않은 교회들 조차 이러한 변화로 인해 서구와 교회를 일치시키던 생각에서 새롭게 생겨난 교회들을 포함하는 시각, 그리고 이것은 서구 교회로만 구성된 교회와는 다른 교회라는 변화된 생각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일은 오늘날 선교 단체들도 동일하게 겪는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선교지라 여겨진 나라에 선교사들이 들어가 선교사로만 구성된 조직을 만들고 열심히 선교한 결과 현지인들이 회심하고 더 나아가 선교사로 헌신하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현지인을 선교지의 선교사 조직에 회원으로 받는 것이 합당한지 아닌지 등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단체의 아젠다로 올라온다. 다양한 해결책들이 제시되겠지만 해결책을 찾기에 앞서 여기 뉴비긴이 반추한 것 처럼 지형 변화가 요구하는 인식의 변화를 먼저 생각할 일이다.

 

The truth that the Church is itself something sent into the world, the continuation of Christ's mission from the Father, something which is not so much an institution as an expedition sent to the ends of the earth in Christ's name, has been grasped with a new vividness (12).

 

그런 변화가 이전에 선교를 땅끝으로 간 무슨 탐험대의 과업 쯤으로 인식하던 것 (사실 오늘날도 이런 시각이 없어진 것은 아니죠. 뉴비긴의 이런 묵상 이후에 미국 중심의 여러 선교 운동들이 나오면서 이러한 인식이 다시 확산되었고 저 역시 이런 운동에 기초한 선교 열풍 시대에 헌신한 실천가이지 반추하는 실천가는 아니었습니다. 급 반성^^)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신 그 모든 내용과 방식을 계승하기 위해 세상으로 보내진 공동체라는 좀 더 깊은 인식이 싹 트기 시작한 것이다.

 

The shift in the balance of political power in the world, the attack on 'colonialism' and the rise to independent nationhood of the peoples among whom foreign missionary work was conducted, all combine to discourage patterns of missionary thinking which assume a Western base.

 

그런 교회의 지형 변화 말고도 정치적인 변화, 즉 1차 세계대전 이후 윌슨의 민족 자결 주의가 주장한 바와 같이 여러 나라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나라를 세우면서 식민시대를 마감하는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고 이러한 변화로 인해 더 이상 서구 중심의 선교 이해는 점점 통용되지 않게 되었다.

좀 정리하자면, 서구와 선교가 동일시 되던 시대에서 이제 모든 (Global Church) 교회의 사명으로 인식되는 지점에서 '선교란 무엇인가'라는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 서구와 선교가 동일시 되던 시대에 의심없이 진행한 - 심지어 성경적이라고 믿고 - 선교가 과연 진실로 성경적인지 - 여기서 아직 그 단어를 사용하고 있진 않지만 삼위일체적 인지 - 새롭게 반추해 보려는 목적으로 뉴비긴은 이 소책자를 썼다. 다음에 계속^^

 

2019년 7월 22일 권성찬